■ 특별기고 / 이 진 수 서울지방보훈청 보훈과

정전협정 60주년과 우리의 과제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12분, 유엔군 수석대표 윌리엄 K. 해리슨 미 육군 중장과 공산군 수석대표 남일 북한군 대장이 서명하고, 국제연합군 총사령관 클라크(Mark Wane Clark)와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중공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가 최종적으로 서명함으로써 6·25전쟁의 정전협정(停戰協定)이 체결되었다. 3년하고도 1개월 동안 지속되었던 포성은 일단 멈추게 된 것이다. 정식 명칭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사령관 및 중공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다.

 

정전(Armistice)이란 무엇인가? 쌍방의 합의 하에 일시적으로 전투가 중단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다시 말하면 어느 일방의 파기로 언제든지 전쟁이 재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의 정전은 북한에 의해 사실상 파기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휴전 이후 60년 동안 북한은 470여 건에 달하는 대남 무력 도발을 해왔고 42만여 차례 정전협정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어민 납북, 민간인 납치, 1·21 사태, 강릉과 울진·삼척의 무장공비 침투, 아웅산 테러 사건, KAL 858기 폭파, 두 차례의 연평해전, 그리고 최근의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등 도발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문제는 최근 북한의 대남 도발이 점차 그 정도를 더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를 선언한 남북기본합의서를 위반하고, 한반도를 재앙의 구덩이로 몰아넣을지도 모르는 핵 실험에 치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정전협정 60주년은 무의미해질 만도 하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정전협정 60주년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되살려야 한다.

 

역사를 살펴볼 때, 휴전은 우리 모두가 전쟁을 잊고 평화의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깨진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년이 지나면서 우리 사회는 어느덧 전쟁의 참상은 잊고 안보불감증이 확산되고 있다. 끝난 전쟁이 아닌 멈춰 선 전쟁인 6·25전쟁도 먼 옛날의 일이 되어버리고 있다. 현충일에 조기(弔旗)가 걸린 집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이고, 사람들은 단순히 노는 날로 인식할 뿐이다. 6·25전쟁을 남침이 아니라 북침으로 잘못 알고 있고, 입으로 평화를 외치면 평화가 저절로 다가오는 것으로 착각하는 젊은이들이 생각보다 많은 게 현실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의 '한국전 참전용사 휴전일'(National Korean War Veterans Armi-stice Day)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2009년 지정된 기념일로, 매년 7월 27일에는 6·25전쟁에서 전사한 3만 7천여 미군을 추모하기 위해 미국 국민 모두가 조기를 걸고 참전용사들의 희생에 감사하며 경의를 표한다. 모든 행정기관과 기업체 건물에도 어김없이 조기가 내걸린다. 작년 미 의회에서는 2012년과 2013년을 '한국전 참전용사의 해'로 결의하고, 추모 및 기념행사를 비롯한 대대적인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국방부에서도 펜타곤에 한국전쟁 전시관을 마련해 오는 5월 말 메모리얼 데이(현충일)에 맞춰 국방장관 등 정부 고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식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전혀 알지도 못하고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참전했던 백발이 성성한 파란 눈의 용사들은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이룩한 대한민국을 보면서 그들이 흘린 피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에 자랑스러워한다.

 

이제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분명히 기억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수 백 년 동안 잠잠하던 휴화산이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하면서 엄청난 용암과 불꽃이 흘러내리듯이 민족의 대재앙을 초래하고 16만 UN군의 희생을 가져온 6·25전쟁은 자칫하면 다시 불붙을 수 있다는 것과 우리는 항상 이를 염두에 두고 대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6·25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7·27 정전협정을 영원한 종전으로 만드는 길은 국민들의 투철한 안보의식, 그리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호국영령과 참전용사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는 교훈과 같이 과거의 상처를 잊지 않고 미래를 대비하는 자세는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