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합짬뽕 한 그릇 팔때마다
100원씩 적립, 불우이웃 돕죠"
중구 순화동 서소문 고가차도 부근 중국요릿집 '만리성'은 홍합이 듬뿍 들어간 얼큰한 '홍합짬뽕'으로 유명하다. 점심시간은 물론 저녁시간에도 줄을 서있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런데 이 집 카운터에는 명물이 하나 있다. 도금 입힌 '황금 항아리'가 그 주인공.
사장 겸 주방장인 이진강(47)씨는 손님이 팁을 주면 금액을 보지도 않고 높이 30cm쯤 되는 이 항아리에 넣는다. 항아리 안에는 우리나라 돈은 물론 외화도 수북이 쌓여있다.
외국 여행 잡지에 소개돼 만리성을 찾는 외국인들도 꽤 많다. 땀을 뻘뻘 흘리며 얼큰한 홍합짬뽕을 먹는 그들의 모습도 신기하지만 음식 맛에 반했다며 팁을 주는 그들의 마음 씀씀이도 신기하다. 그래서 이 항아리 안에는 많은 외국 관광객들의 고마움이 새겨진 달러와 파운드, 엔화, 바트 등 세계 각국의 다양한 지폐와 동전이 담겨 있다.
지난 2008년 12월에는 홍합짬뽕 집을 하면서 17년 동안 모은 외화를 구세군에 기부했지만 지금도 자신이 기부한 돈이 정확히 얼마인지 모른다.
"구세군에 기부하면서 느꼈던 행복은 서소문으로 가게를 옮긴 후 중구 행복더하기에 동참하면서부터 시작됐어요."
화교인 이씨는 어려웠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 이런 선행을 결심했다.
중국 산둥(山東)성 출신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의 3남2녀 중 넷째인 이씨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58세였다. 가난 탓에 이씨는 명동 한성화교소학교 6학년 때부터 연희동 한성화교중학 고등부를 졸업할 때까지 7년 동안 방학마다 중국 요릿집에서 하루 12시간씩 배달과 허드렛일을 했다. 성적은 늘 꼴찌였고 학교에선 혼나기 일쑤였다.
고교 졸업 후 화교학교 동창인 아내 장덕주(47)씨와 결혼했고 유명한 중국 요릿집을 돌면서 자신은 주방, 아내는 홀서빙을 맡아 종업원으로 일했다. "나만의 메뉴를 가진 중국요릿집을 열겠다"는 꿈이 있었지만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1980년대 말 배달 전문 중국 요릿집을 열었다가 배달원이 낸 교통사고 배상금을 무느라 빈털터리가 됐다. 1990년대 초 종로구 중학동에 다시 요릿집을 열어 홍합을 잔뜩 넣은 '홍합짬뽕'을 개발했지만 손님 반응은 냉담했다. 2003년 중학동 일대가 개발되면서 권리금도 못 건지고 나와야 했고, 서소문 고가차도 밑 지금 자리에 가게를 냈다.
행운은 2006년 2월 우연히 찾아왔다. 홍합짬뽕을 먹고 간 손님이 인터넷에 올린 사진을 보고 한 방송사 아침 프로그램 제작진이 찾아온 것. 15분 방송을 타고난 다음 날 가게 앞에는 손님 300여명이 늘어서 있었다.
이씨는 돈을 번 뒤에도 어렵던 예날을 잊지 않았다. 2007년초 항아리를 구해 홍합짬뽕을 팔때마다 한 그릇에 100원씩 넣었고, 이젠 팁을 넣고 있다.
가난한 사람을 돕고 싶다는 그에게 박종성 소공동장(현 중구 사회복지과장)이 다리를 놓아 중구 행복더하기와 인연을 맺고, 한달에 10만원씩 저소득층을 위해 내놓았다. 설과 추석, 연말연시에는 저소득층 주민들이 따뜻한 명절과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매번 성금도 냈다.
화교지만 소공동 주민들이 그들을 따뜻이 보듬었다. 그것이 더 고마웠다. 그래서 동네 일이라면 열심히 뛰어다녔다. 지난 2009년부턴 소공동 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한다. 부인인 장씨도 바르게살기위원회와 행복더하기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나누는 기쁨을 알게 되자 일하는 즐거움도 생겼다. 그러자 거짓말같이 손님이 곱으로 늘었다. 특히 공중파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손님이 떼로 몰려왔다. 그는 손님들을 위해 재료를 아끼지 않고 더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들었다. 봉사의 기쁨을 알게 되면서 매년 갔던 해외여행도 가지 않고 모두 봉사에 투자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