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부터 명동 해치홀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메노포즈’.
‘사춘기 때부터 레이스 헝겁 속에 / 꼭꼭 싸매 놓은 유방 / 누구에게나 있지만 항상 / 여자의 것만 문제가 되어 / 마치 수치스러운 과일이 달린 듯 / 깊이 숨겨왔던 유방’
‘메노포즈’는 문정희 시(詩)의 뮤지컬 버전으로 읽을 수 있는 텍스트다. 시 ‘유방’에서 서정적 자아는 늙고 병들어서야 자신의 몸을 온전히 자기 소유로 인식하게 된다. ‘메노포즈’는 제목처럼 폐경기에 들어선 각자 차별화된 개성을 지닌 여성 네 명의 처절한 자아 찾기가 음악과 춤으로 발랄하고 흥겹게, 때로는 코끝이 찡하게 펼쳐진다.
지난 14일부터 명동에 소재한 다목적 공연장 ‘해치홀’에서 뮤지컬 ‘메노포즈 Menopause’가 공연되고 있다. 지난 4월 개관한 신생 공연장으로, 브로드웨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작품을 내년 1월31일까지 무대에 올림으로써 지역 공연예술의 새 명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커리어 우먼, 한때 전성기를 구가했던 퇴물 여배우, 대학 시절 운동권이었고 현재 남편과 전원생활을 하는 여성 그리고 평범한 전업주부. 이들은 백화점 란제리 세일 코너에서 조우한다. 그들의 만남을 매개하는 것은 브래지어다. 가슴은 여성을 나타내는 환유다.
‘윗옷 모두 벗기운 채 / 맨살로 차가운 기계를 끌어 안는다 / 찌그러지는 유두 속으로 / 공포가 독한 에테르 냄새로 파고든다 / 패잔병처럼 두 팔 들고 / 맑은 달 속의 흑점을 찾아 / 유방암 사진을 찍는다’
유방암 검사를 하며 두려움을 느끼는 이 시의 서정적 자아처럼 네 여성은 폐경기에 접어들어 신체의 변화에 대해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워 한다. 히스테리적 증상마저 보이며 현실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시적 화자는 ‘우리의 어머니가 이를 통해 / 지혜와 사랑을 입에 넣어 주셨듯이 / 세상의 아이들을 키운 비옥한 대자연의 구릉’이라면서 ‘다행히 내게도 두 개나 있어 좋았지만 / 오랜 동안 진정 나의 소유가 아니었다’고 읊조린다.
가슴은 ‘사랑하는 남자의 것’이었고 ‘또 아기의 것’이었다. 여배우를 제외한 세 여성은 어머니로, 아내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고, 여배우도 세상 사람들의 시선 속에 자신을 가둬 놓았다.
그들 자신들은 철저하게 타자의 요구 속에 규정된 삶을 살아온 것이다.
몸은 세월을 기록한다. 시적 화자가 ‘나 지금 윗옷 모두 벗기운 채 / 맨살로 차가운 기계를 안고 서서 / 이 유방이 나의 것임을 뼈저리게 느낀다’고 읊듯, 네 여성은 신체적 쇠락을 겪으며 비로소 자기 자신을 찾는다.
공연의 후반부, 내러티브에서 벗어난 듯 뮤지컬 넘버가 이어지고 ‘제4의 벽’마저 무너뜨리며 관객을 무대에 끌어올려 함께 춤추며 마무리됨으로써, 시적 자아가 ‘맑은 달 속의 흑점을 찾아 / 축 늘어진 슬픈 유방을 촬영하며’ 자신을 소유하게 됐듯, 그 시간과 공간에서 ‘메노포즈’ 공연을 함께한 사람들 역시 자아를 찾는 축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