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단공원에 있는 이준열사 동상
가까이 있기에 오히려 그 중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우리 중구는 위락시설도 많고 좋은 문화환경을 갖추고 있는데 그중 현충시설에 대한 친밀도는 다른 문화시설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본 시리즈를 통해 잊고 있었던 중구의 현충시설에 대해 살펴보고 우리의 민족혼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헤이그 밀사로 유명한 이준(1858∼1907) 열사는 함경남도 북청군 속후면에서 태어났다.
만민공동회 독립협회 개혁당 운동등을 벌이다가 1904년 일제가 러일전쟁을 일으키고 제1차 한일의정서를 강제 체결해 내정간섭을 자행하며 침략정책을 강화하자 이에 대한 반대 시위운동을 일으키는 데 주동적 구실을 했다. 이어 일본이 전국의 황무지 개척권을 요구하자 송수만 등과 함께 대한보안회를 조직해 반대투쟁을 전개했으며 일제가 조종하는 친일분자단체 일진회(一進會)에 대항하고자 공진회(共進會)를 조직해 애국계몽운동에 힘썼다.
1905년 11월 일제가 무력으로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강제체결하고 국권을 박탈하자 을사조약폐기 상소운동을 비롯 국권회복을 위한 실력양성을 목적으로 보광ㆍ오성학교등을 세웠다.
1907년 광무황제(고종)로부터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라는 밀명을 받고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에 도착, 광무황제의 친서전달과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리려 했으나 일제의 방해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자 통분 끝에 현지에서 순국했다.
이준 열사를 기리기 위해 1962년에 대한민국 건국훈장인 대한민국장이 추서됐고 그 동안 헤이그에 묻혀 있던 유해는 이듬해인 1963년 서울 수유리 묘지로 이장됐다.
현재 장충단공원에 있는 높이 3m(좌대높이 4.8m)의 이준열사 동상은 1964년에 건립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