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 백남주 학예사가 화폐의 인물도안이 갇는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3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중에 유통된 5만원권의 새로운 지폐는 우리나라의 화폐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전망이다. 5만원이라는 고액권 발행도 그렇지만 인물초상이 여성인 신사임당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이에 따라 본지에서는 화폐박물관을 찾아 우리나라 화폐도안의 변천사등을 알아보고 5만원권 발행이 갖는 긍정적 측면 등을 조명해 본다.
우리 화폐 변천사 … 수노인상 많이 쓰여
외국엔 위대한 명성을 떨친 여성들 많아
# 화폐 등장 인물
현재 세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화폐에 등장하는 인물은 누가 있을까? 미국은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1달러)·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2달러)·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5달러)·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10달러)·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20달러)·18대 대통령 ‘율리시스 그랜트’(50달러)·정치가 ‘벤자민 프랭클린’(100달러) 등이 있다.
영국은 앞면에는 모두 ‘엘리자베스2세’가, 뒷면에는 사회개혁가 ‘엘리자베스 프라이’(5파운드)·생물학자 ‘찰스 다윈’(10파운드)·작곡가 ‘에드워드 엘가’(20파운드)·초대 영란은행 총재 ‘존 호블런’(50파운드) 등이 있다.
일본은 세균학자 ‘노구치 히데오’(1000엔)·소설가 ‘히구치 이치요’(5000엔)·교육자 ‘후쿠자와 유키치’(10000엔) 등으로 모두 그 시대를 대표할 만한 인물이 화폐에 자리했다. 한편 북한은 ‘김일성’이 그려진 100원을 제외한 모든 화폐에 특정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공산주의와 혁명사상을 이룩한 대표적인 인물이 김일성이라는 판단에서 나온 결과물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인물은 누가 선정됐을까.
지금까지 우리나라 화폐에 등장했던 인물은 △일본무존(日本武尊, 라케루노 미코로 : 일본경행천황) △수노인(壽老人, 혹은 김윤식) △대흑천(大黑天, 재복(財福)을 상징하는 신) △세종대왕 △퇴계이황 △율곡 이이 △일반인인 어머니와 아들 △이승만 △삽택영일(澁澤榮一 : 일본 제일은행 총재) △충무공 이순신 등이다. 특이할만한 것은 수노인상(壽老人像)을 도안으로 쓴 경우가 많았다는 것. 수노인은 사람의 수명을 관장하는 남극성(南極星)의 화신으로 옛날에도 지금처럼 사람들이 장수(長壽)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 뒷면의 그림
우리 화폐의 뒷면에는 이제까지 어떤 도안이 사용됐을까? 뒷면에는 조선은행 본점(현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 건물), 성화와 식물문양, 독립문, 해금강 총석정, 탑골공원, 원각사지 10층석탑, 벚꽃무늬, 경복궁 근정전, 도산서원, 경회루, 오죽헌, 거북선, 봉화, 무궁화, 계상정거도, 현충사, 혼천의 등이 쓰였다. 이 중에서 한국은행 본점과 독립문이 가장 많이 쓰였으며 한번 정해진 도안은 잘 바뀌지 않았다.
미국은 독립기념관, 재무성, 백악관, 국회개회모습, 국회의사당, 링컨기념관 등을, 일본은 후지산과 벚꽃, 평등원(平等院)의 봉황상, 겐지이야기 그림책, 무라사키 시키부 초상, 에도시대 공예가 오가타 고린의 ‘제비붓꽃’ 등을 사용한 것을 보면 각 나라마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물에 대한 시각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독일은 인물보다 건축, 다리 등을 많이 사용해 건축물에 나라의 대표성을 두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렇듯 화폐에 쓰이는 도안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대표하는 것처럼 새로운 화폐가 발행될 때마다 온 국민이 관심을 갖고 여론을 조성하는 일은 당연한 흐름인지도 모른다.
최초의 여성등장 화폐 어떤 의미 있나
“우리사회 여성인식 달라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화폐에 등장한 여성은 △강한 오스트리아를 일군 ‘마리아 테레지아’ △영국의 위대한 군주 ‘빅토리아 여왕’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2세’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셀마 라겔뢰프’ △등불을 든 천사로 불린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이탈리아 의사이자 교육자인 ‘마리아 몬테소리’ 등 역사적으로 위대한 명성을 떨친 인물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번에 신사임당이 5만원권 화폐에 등장하게 됐으며,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 백남주 학예사의 설명을 들어봤다.
#역사적으로 신사임당 도안이 갖는 의미는.
엄밀히 말하면 여성이 화폐 주인공이 됐던 적이 있다. 바로 1962년 100환짜리 지폐 안에서 한복을 입은 어머니와 색동옷을 입은 아이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저금통장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인데, 발행된 지 20여일 만에 화폐단위가 ‘원’으로 바뀌는 바람에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됐다.
고액권에 처음으로 여성이 도안된 것은 우리 사회가 여성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증거다. 그동안 왜 남자들만 계속 화폐의 주인공이 되는가에 관한 말들이 많았다. 서양은 물론 일본과 중국에서도 이미 화폐에 여성이 등장했듯, 여성과 남성이 함께 가야 하는 동반자라는 점에서 여론이 반영된 것이다.
#왜 신사임당인가.
선정에 대해 상당히 논란이 많았다. 우리는 흔히 신사임당이라고 하면 아이를 잘 키우고 남편 내조를 잘했던 현모양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다른 의미에서도 현대 여성에게 귀감이 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당시 신사임당은 화가로서 인정을 받고 있었으며 현모양처라는 틀이 주어진 것은 그 이후다. 조선시대 아티스트로서 이런 여성이 있었다는 것과 어려운 시대에 훌륭한 자식을 키웠다는 것 등에 모두 의미를 둘 수 있다.
#화폐에 인물이 새겨진다는 것.
화폐 도안의 76%에 인물이 새겨져있다. 그 나라를 가장 잘 대표할 수 있는 것이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화폐를 통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잘 알릴 수 있기 때문에 화폐를 발 없는 외교관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위조 방지에 있다. 한 사람이 갖고 있는 독특한 형식, 즉 피부, 수염, 머리카락, 눈동자 등 쉬운 위조를 방지하는 것도 화폐에 인물을 새기는 이유다.
#중구민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
이번에 발행되는 5만원권에는 신사임당 외에도 신사임당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묵포도도(墨葡萄圖)’ ‘초충도수병(草蟲圖繡屛)’과 어몽룡의 ‘월매도(月梅圖)’, 이정의 ‘풍죽도(風竹圖)’가 함께 그려져 있다. 지갑 속에 한 폭의 대나무와 매화 그림 등을 항상 지니고 다니는 것이다. 외국인들이 돈을 보고 이게 누구인지, 누구의 작품인지를 물어봤을 때 도안에 대해 설명을 해주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우리 그림이 있다는 것을 화폐를 통해 자랑할 수가 있는 것이다.
5만원권 발행에 관해 알려지는 것처럼 단점이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 갈 수도 있는 것이다.
2009년 6월 23일은 대한민국 화폐 발행 역사에 있어서 참 아름다운 돈이 발행된 날로 기억됐으면 한다.
23일부터 본격 유통 … 궁금증 한은 홈페이지서
지난 23일 시중에 첫선을 보인 5만원권 지폐에 대해 궁금한 사항은 한국은행 홈페이지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15일 5만원권 디자인과 주요 위조방지장치, 영상자료 등을 담은 5만원구너 안내방을 홈페이지(www. bok.or.kr)에 개설했다.
홈페이지에 접속해 오른쪽 하단에 위치한 '오만원권 안내'에는 우리나라 화폐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와 함께 '5만원권이 다른 지폐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5만원권 주조색을 황색으로 정한 이유' '5만원권에는 어떤 위조방지장치가 적용돼 있나' '시각장애인은 5만원권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나' 등 일반인들이 자주 묻는 질문에 대한 설명도 제시돼 있다. 도 질문 게시판을 따로 마련해 언제든지 궁금한 사항을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한편 빠른 번호 화폐를 한국은행 본점에서 선착순으로 공급하던 관례는 앞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한국은행은 새로 발행되는 5만원권 중 1죿100번까지는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에 전시하고, 101번부터 2만번까지는 인터넷 경매에 부치기로 했다. 이후 번호는 시중은행, 특수은행, 지방은행 본점과 우정사업본부를 대상으로 무작위 발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