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공원 내 있는 성재 이시영 선생의 동상.
가까이 있기에 오히려 그 중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우리 중구는 위락시설도 많고 좋은 문화환경을 갖추고 있는데 그중 현충시설에 대한 친밀도는 다른 문화시설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본 시리즈를 통해 잊고 있었던 중구의 현충시설에 대해 살펴보고 우리의 민족혼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남산공원 내에 세워진 성재 이시영 선생상은 1986년에 건립된 좌상으로 높이 2.7m(좌대 높이 4.3m)에 이른다.
서울 저동에서 태어난 이시영(1869∼1953) 선생은 본관 경주이고 호는 성재(省齋)ㆍ시림산인(始林山人)이며 본명은 성흡(聖翕)으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이다.
일찍이 학문성취를 이뤄 벼슬길에 올라 구국을 위해 힘썼다. 독립운동으로 안창호 이승훈 이동녕등과 비밀결사인 신민회를 조직해 국권회복 운동을 전개했으며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뒤에는 만주로 망명, 신흥강습소를 세워 독립군 양성에 주력했다.
1919년 4월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법무총장ㆍ재무총장을 역임하고 1929년 한국독립당 창당에 참가, 초대 감찰위원장에 피선됐으며 이후 임시정부 직제 개정 때 국무위원 겸 법무위원이 돼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1945년 8ㆍ15광복과 더불어 귀국했다.
그 후 대한독립촉성회 위원장으로 활약하다가 1948년 정부가 수립되자 초대 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대통령 이승만의 비민주적 통치에 반대하고 1951년 부통령을 사임, 1952년 제2대 대통령선거에 민주국민당 후보로 입후보했으나 낙선했다.
1953년 4월17일 85세로 운명하시니 지난 4월17일이 서거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국민장으로 정릉(貞陵) 남쪽에 안장되었다가 1964년 수유리로 이장되었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