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주(鄭夢周 1337∼1392) 호는 포은(圃隱).
고려 삼은의 한 사람으로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중종 때 문묘에 배향 됐고 개성의 숭양서원등 11개 서원에 제향 됐다.
원나라에서 수입돼 파종된 주자학의 이념을 고려말 경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주자학의 기본영역으로서 실천형식을 제시한 '주자가례'의 시행과 형이상학적 이론체계를 제시한 성리학의 학문적 틀을 제시하는데 주력했으며 더불어 주자학의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당시 큰 영향력을 행사한 불교를 비판하는 척불론을 적극적으로 제기했다.
그의 학문적 성과는 주자학이 지식의 수준을 넘어 이 시대 유교이념의 실천형식을 정립하는 중대한 계기를 제공하고 아울러 성리학적 인식에서 획기적인 수준을 구축했다고 평가되며 '우리나라 이학의 시초'로 추대받기에 이른다.
말년에는 혁명을 도모한 이성계 일파에 맞서 고려왕조를 수호하기 위해 충절과 의리를 고수한 '사직지신'으로 순절하게 된다. 이밖에 의창을 세워 빈민을 구제하고 개성에 5부 학당과 지방에 향교를 세워 교육진흥을 꾀했으며 '신율'을 간행, 법질서의 확립을 위해 노력했다.
'포은집'이라는 문집을 펴냈으며 시조 '단심가'등 많은 한시가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