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간호사로 일하다 보면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치매을 앓아 도움이 필요한 할머니, 가족들을 모두 잃고 몸까지 아파 외롭게 살아가는 아줌마, 하루종일 공사판에서 번 돈으로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는 아저씨 등등…
대부분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다 보니 이 분들을 모두 도와주지 못하는 내 능력의 한계에 한탄을 한적도 많다. 그러나 이렇게 어려운 분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고자 하시는 분들을 만나면 힘이 솟는다.
올 1월에 만난 심만규 님도 바로 그런 분이다.
오랜만의 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만든 1월 어느 날 오후, 방문을 마치고 허기진 배와 추위에 언 손을 호호 불며 사무실로 들어왔을 때 낯선 분으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신당5동에서 조그마한 식품 대리점을 하고 있다는 심만규 님이었다. 심만규 님은 약소하나마 성품을 기탁하고 싶다고 하였다.
다음날 팀장님과 함께 약속시간에 맞춰 정한 장소로 갔다. 다산어린이공원 옆에 있는 정갈하면서도 아담한 ○○상사 상호가 눈에 띄었다.
사무실로 들어서자 예상한대로 심만규 님이 우리를 따뜻이 맞아주었다. 심만규 님은 구청에서 매달 발행하는 소식지인 ‘중구광장’에 소개된 방문간호사 기사를 보고 중구에 ‘1인1동 방문간호사제’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음지에서 말없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애쓰는 방문간호사들께 큰 감동을 받았다며 각 동 담당 방문간호사의 이름이 적혀있는 기사를 오려 사무실 한쪽 벽면에 붙여 놓고 계셨다.
심만규 님은 1년에 두어 차례 정도 이러한 좋은 일을 하는데 동참하고 싶으시다며 140만원 상당의 식용유와 비누, 각종 건강식품 등을 성품으로 내 놨다.
덕분에 우리는 신나는 마음으로 성품을 어르신들께 전달해 드렸다. 어르신들 또한 그 고마운 독지가가 누구냐며 중구에서 살면 살수록 행복하다며 무척 고마워 하셨다. 하지만 곧 일상으로 돌아간 나는 하루 종일 방문간호 대상자를 방문하고 경로당 건강관리도 맡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느라 심만규 님과의 약속은 잠시 잊고 있었다.
그때 울리는 한통의 전화, 심만규 님이었다. 그는 가끔씩 연락주시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고 계셨다.
반가운 마음에 다음날 팀장님을 모시고 그 분의 사무실로 갔다. 여전히 활기찬 모습으로 선한 미소와 함께 우리를 맞아주셨다. 이번에도 김을 90박스나 주시며 입맛 없는 어르신들께 나누어 주셨으면 한다고 말씀하셨다.
다음날 가정방문에 나섰다. 마침 어르신이 식사를 하고 계시는 중이어서 자연스럽게 김을 꺼내 드렸다. 그랬더니 눈물을 글썽이시며 누가 이렇게 나 같은 늙은이 반찬걱정까지 해주겠냐며 너무나 고마워하셨다. 김맛도 바삭거리고 고소하다며 우리가 보는 앞에서 밥 한 그릇을 금새 비우셨다. 아마도 심만규 님의 사랑이 전달돼 더 맛있고 행복한 점심식사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경기침체로 인해 모두들 어려운 가운데 제 살길 찾는데 바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처럼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웃을 돌아보고 온정을 베푸는 분이 있어 세상은 훈훈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분을 보면서 나 또한 하는 일에 자부심과 뿌듯한 보람을 갖고 방문간호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