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갈등 희생물 전락 곤란
사회복지 빙자 권력 종속화 우려
국민연금개혁이 표류하더니 버림까지 받는 것 같다. 요즘 어느 것 하나 합의하지 못하는 정치권이고 보면 국민연금개혁이 정치판에 끼어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것도 별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처음에는 국민연금개혁에 대해 여당이고 야당이고 할 것 없이 마치 대단한 사명을 수행하는 것처럼 목청을 높이더니, 지금의 연금개혁은 어디 구석에 처박혀 있는 휴지 조각으로 전락해 버려진 느낌마저 든다.
물론 우리나라 국민연금이 선진국만큼 급박한 상황이 아님에도 재정안정을 미리 논하고 선진국의 시행착오를 답습하지 않고자 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더구나 선진국들도 공적연금의 재정불안정 문제를 국가재정이 버티지 못할 때까지 미뤘던 것에 비하면 우리는 그래도 양호한 편이고 좀 늦어도 괜찮다고 느긋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진국이 그랬듯이 논의만 하고 개혁을 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게 된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연금에 대해 각자가 주장하는 형태로 개혁만 되면 다른 모든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처럼 국민에게 과대 포장 선전을 하고 있다. 정말 그럴까, 우리는 얼마 전 까지 의료보험이 도입된 이후 관리운영체제 때문에 겪은 갈등으로 20여 년 동안 시간을 허비한 적이 있다. 그 때도 의료보험의 관리운영문제만 해결되면 다른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처럼 오직 조합방식과 통합방식을 놓고 극단적인 대립을 했다. 그 결과로 건강보험은 최근까지 심각한 문제들로 지적되는 적용대상의 범위, 재정부담 형평성, 수가를 포함한 급여의 범위와 수준 그리고 재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를 방치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던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국민연금은 재정문제 외에도 아직 많은 제도적 결함이 있다. 국민적 불만이 되고 있는 내부 및 외부의 사각지대 문제, 장애 및 유족 급여의 미흡성 문제, 중복급여 관련 비합리적 규정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고스란히 산적해 있다. 또한 제도적 불신이 되고 있는 소득파악문제와 기금운용과 제도 관리운영의 지배구조 문제 등에 대한 해결은 아직 요원하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국민연금개혁은 국민연금 발전 측면에서 보면 전체의 한 부분에 불과하고 시적 단계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국민연금개혁은 정치적 갈등의 희생물로 전락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국민연금 개혁은 놔둔 채 정치적 논란만 오가는 제2의 의료보험 갈등이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해결해야 할 국민연금제도의 산적한 문제는 뒷전으로 물러나, 결국 세계최고 속도의 노령화에 대응하는 노후보장은 공염불로 남게 된다. 국민연금개혁은 정치권이 국가 발전에 기여한다는 가능성을 보이는 유일한 기회이다.
나머지 국민연금의 문제들은 일단 연금개혁을 해결한 뒤 성실히 개선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다시 말하면 국민연금을 발전하는 데 있어서 국민연금개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마치 지금 논란이 되는 개혁 문제만 해결되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성숙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도 순진한 발상이다. 정치적 이해관계로 국민연금개혁을 하지 못하면 결국 국민연금의 재정안정도, 제도 발전도 물 건너가게 된다.
선진국이 1세기가 넘는 동안 제도를 개선한 것이 비록 재정안정에는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나머지 우리가 고민해야 할 수많은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연금개혁은 국민연금 발전의 필수적인 필요조건이다. 현재 재정개혁 문제를 빨리 매듭짓고 해결해야 제도 발전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의 자성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