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8일 을미사변시 명성황후가 일본인에 의해 시해당할 때 순국하신 궁내부대신 이경직 등 9인의 선열을 추모하기 위해 올리는 제례인 장충단제에 참석하면 꼭 빠지지 않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10년째 장충단제 제례를 진행하는 집례일을 수행하고 있는 중구청 문화체육과 이상준씨가 바로 그 주인공. 그는 중구청 문화체육과에 근무한 1996년부터 지금까지 제례의식을 진행하는 제관으로 오늘날 행사의 사회자와 같은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다.
이씨는 "96년 당시 장충단제 업무분담을 하면서 집례할 사람을 고르는데 지도를 위해 성균관에서 오신 분이 목소리가 우렁차다고 저를 시키더라고요. 그게 인연이 됐죠"라며 집례를 맡게된 배경을 설명했다.
초기에는 한복 착용법, 제례 전 몸가짐 등의 주의사항을 미처 숙지하지 못해 실수를 반복하는 등 서툴기만 했던 집례 역할이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며 10년이란 세월동안 집례를 맡다보니 이젠 제법 베테랑 냄새가 난다는 얘기도 종종 듣는다고.
장충단제례는 99년부터는 성균관과 양천 향교에서 전담하고 있는데 반해 집례만은 구청 직원 중 유일하게 이씨가 지금까지 맡아오고 있어 나름대로 자부심도 느끼고 있다고.
전통제례에 직접 참여해 본 적은 장충단제가 처음이었다는 그는 집례 역할을 하면서 제관들이 하는 것을 옆에서 꼼꼼히 체크하고 나름대로 공부도 하다보니 이제는 보통 사람들은 어려워하는 제례 의식의 의미에 대해서도 웬만큼 알 수 있게 됐다면서 뿌듯해 한다.
제례 3일 전부터는 술도 자제하고 아내도 멀리하는 등 집례에 업무적인 일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성심을 다하고 있는 이씨의 소망은 머리에 맞는 건을 써보는 것. 머리가 보통 사람들보다 큰 편이어서 맞는 건이 없는 탓에 매년 칼로 건 뒷부분을 잘라야 겨우 건을 쓸 수 있어 이상한 모양새 때문에 양천향교 관계자의 눈총을 받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단다.
오랜 세월 집례를 맡은 탓에 이제는 매년 장충단제마다 도포를 말끔하게 차려입고 유창하게 집례를 하는 이씨를 보는 지역 주민들이 그의 차분하고 능숙한 집례에 성균관 유생이 온 마냥 착각하기도 할 정도라고.
아직도 막상 제단에 올라가면 긴장이 된다는 이씨는 "장충단제와의 인연으로 인해 우리나라 제례 등의 전통문화에 대해 좀 더 깊이 이해하고 평상시에도 유생의 예의범절을 준수하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게 됐다"면서 집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