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 4.16
세상은 무질서한 존재들의 반복에 의한 구조로 완성된 무질서 속 질서의 완성체이다. 창조주께서 세상을 창조할 때 그 원리를 철저히 이용하였기 때문에 초 자연환경일수록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시각적 감성이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무리 아름다운 디자인을 한다고 하여도 순수 자연보다는 아름다운 디자인은 없다고 생각한다.
담배표지의 디자인을 보면 우리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연약한지를 극명하게 알 수 있다. 외국의 담뱃갑 경고문구(혐오사진)와 사진을 보면 그 혐오스러움에 놀랄 뿐이고 그러함에도 그 담배라는 물질을 사야만 하는 사람들의 중독성은 무엇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그나마 유럽연합(EU)에서는 2016년부터 법과 규제를 통하여 표지의 65%를 흡연경고 사진으로 채우고 강도 높은 금연 정책에 들어갔다. 이는 환자를 만들지 않는 예방의학의 기본적 지침으로 인류건강에 다소나마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할 수 있겠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흡연을 세계 제1의 공중 보건문제로 지정하였고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담배와의 전쟁을 선포하였고 CVS(미국 편의점 2위)에서도 판매 중지를 선언하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실정은 아직도 후진국 정책에서 못 벗어나고 있음을 담배광고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담뱃갑 디자인을 보면 청소년들이 호기심으로 구매를 촉발하는 색상과 그림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에 우리는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이익을 극대화하자는 기업의 윤리가 과연 이 시대에 정당한가를 우리는 따져야 할 것이다. 담배인삼공사의 사업 방향이 국민의 건강을 증진하는 건강식품 홍삼과 인체에 가장 유해한 담배를 동시에 공급한다는 건 윤리적으로 보아도 타당하지 않으며 비판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흡연이 인간에 주어진 자유의 의지로 행한 개인적인 행위라 할지라도 인체에 해로운 담배를 지속적으로 공급한 결과의 진실은 양심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얼마 전 흡연피해자들이 케이티앤지를 상대로 소송하였으나 그 결과는 흡연자들의 패소로 결정지어졌다. 한없는 약자는 진실의 결과에 대하여 세상적 윤리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통감하며 눈물을 흘릴 뿐이다. 15년을 끌어온 담배 소송에서 흡연자들의 패배는 아직도 이사회가 인체의 순순한 진리를 밝혀내지도 못하는 미개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해준 판결의 결과인 것 같다.
4800여종의 화학물질 비소, 청산가리 등 69종의 발암 물질로 구성되어 있는 담배가 우리에게 준 진실은 폐암환자 가운데 흡연사실이 있는 비율이 90%라는 사실과, 2012년도 흡연 폐암사망자가 5만8천여 명이라는 사실, 흡연자의 가족(간접흡연자)이 24% 폐암 발생빈도가 더 높다는 사실이다. 담배라는 연기 속에서 오늘도 청소년들과 어른들은 폐암이라는 90%와 10%의 모순을 담보로 하얀 뭉게구름으로 자신을 서서히 죽여가고 있는 모습이 담배의 진실이다.
늦었지만 다행히도 건보공단에서 ㈜케이티앤지와 필립모리스 코리아㈜ BAT 코리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이번에는 뭔가 다른 느낌으로 기대해본다. 반드시 승소해야 함이 마땅하고 지난날의 과오까지도 보상을 받아 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건강보험료를 지불한 국민으로서 담배라는 물질은 마약으로 규정하여 이 세상에서 반드시 사라지게 하여야 할 책임을 건보공단에 부여하고자 한다. 이에 대다수의 국민들은 건보공단을 지지할 것으로 생각하며 격려와 응원을 보내고자 한다.
나의 가족 나의 친구 그리고 나의 지인들을 폐암과 같은 질병으로 잃게 된다면 아마도 담배가 가장 원망스러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고유한 신체를 우리의 의지로 훼손하지 않고 유지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원래 인간은 청각과 시각이라는 감성으로 느끼고 혼돈할 수밖에 없다. 그 약점을 잘 아는 전문가들이 지략으로 이용한 지난날들의 과오를 반성하고 이제부터는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소비자들의 건강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결정체는 혼돈의 무질서 속에서 이루어진 질서이다. 그걸 우리 디자인에서는 프랙탈이론(Fractal theory)이라 한다. 보이지 않는 진실을 이용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이 세상은 더 이상 용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무질서 속의 질서란 율법과 법칙에 기준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진실에 의존하는 질서인 것이다. 그 질서야 말로 가장 아름답고도 이 시대가 요구하는 성숙된 공동체 사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