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르뽀 / 퓨전주점 "잔술, 납시오"

 

◇'잔술 납시요.' 여종업원이 소주가 가득 담긴 잔술을 받쳐들고 주문한 손님에게 가고 있다.

 

 본지는 7월16일 굿데이신문과의 업무제휴를 통해 상호 모든 컨텐츠를 공유키로 함에 따라 시사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는 '현장르뽀'를 게재, 중구자치신문 독자들에게 신선하고 감각적이며 쇼킹한 뉴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한다.

 

술 잘 못하는 여성들에 인기

수도권 시작 전국망 추진도

 

 400원짜리 한잔 술로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린다. 퓨전주점의 '잔술'이 인기다. 계속 이어지는 불경기로 가벼워진 주머니가 옛날 주당들의 인기 품목을 되살려놓은 것이다. 이른바 '불경기 마케팅'이다. 요즘 세상에 만원짜리 하나로 남부럽지 않게 안주까지 시켜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 거기에다 한모금 연기가 삶의 여백처럼 피어오르는 '가치담배'는 또 어떤가.

 

 지난 12일 오후 8시 서울 성동구 지하철 5호선 행당역 인근의 S주점. 실내는 담배연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왁자지껄한 소리로 가득하다. 20여개에 이르는 테이블이 꽉 찰 정도다. 대부분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정말 잔술을 파는지 확인하려고 들어왔지. 우리 젊었을 때는 많이 먹었는데, 나라가 좀 산다 싶어지니까 없어졌거든."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자리에 앉자마자 잔술을 시킨다. 우동국물 하나에 미역 무침이 전부인 안주에다 소주 한잔을 받아든 할아버지는 옛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나는 표정이다.

 

 술값은 소주 한잔당 400원. 가볍게 먹고 싶을 때는 둘이 와서 잔술 서너잔과 2천500원짜리 꽁치구이 안주 하나를 시키면 5천원 정도로 충분하다. 이따끔 잔술 한잔씩과 생선구이나 계란찜 하나만 달랑 시켜놓고 1시간 이상 이야기꽃을 피우는 커플도 있다고 한다.

 

 이런 잔술집은 최근 체인점 형태로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다. S주점의 경우 지하철 3호선 교대역, 5호선 오목교역 부근 등을 비롯해 수도권에만 40여개의 점포를 거느리고 있으며 올해부터 전국적인 체인망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S주점의 종업원 김성일씨(26)는 "잔술은 술을 먹을 만큼 먹었는데 딱 한잔이 아쉬운 사람이나 술을 못하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좋다"며 "술은 먹고 싶은데 자동차를 가지고 온 손님들도 '딱 한잔'을 찾곤 한다"고 귀띔했다.

 

 성동구 금호동에 사는 직장여성 김모씨(26)는 "술 마시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처음부터 잔술을 먹는 경우는 드물다"며 "술을 어느 정도 먹고 난 뒤 그냥 가기 서운할 때 잔술 한잔이 그만이다"고 '잔술 예찬론'을 폈다.

 

 서울 동대문구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 인근에 있는 또 다른 S주점도 잔술의 효과를 톡톡히 본다. 이 주점은 전철역에서 200m 이상 떨어져 있는데도 항상 손님이 북적거린다. 심지어 주변 먹자골목이 썰렁한 일요일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잔술이 400원인데 다른 술이나 안주가 비싸봐야 얼마나 비싸겠어요. 2만원이면 손님 두명이 와서 거나하게 취하고도 남아요." 주점 여사장인 K씨(30)의 말이다.

 

 잔술 하면 짝을 이뤄 생각나는 것이 바로 가치담배다. 예전에 담배 한갑을 살 돈이 없는 사람들이 즐겨 찾았던 것이다.

 

 달랑거리는 동전 몇닢으로 담배 한개비를 산 뒤 성냥불을 붙여 들이마시는 첫모금의 맛을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듯하다. 꽁초 부분이 타들어갈 때까지 아껴 피우지만, 그 연기를 '퓨우∼' 내뿜을 때 세상은 조금 너그러워 보였을 터이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돈없는 사람들이 찾는 것이 아니라 금연을 선언했던 사람들의 '애달픈' 한개비로 더 각광을 받고 있다.

 

 남대문시장 인근에서 가판대를 운영하는 김태균씨(가명ㆍ50)는 "주변 직장인들이 가끔씩 가치담배를 찾는데, 대부분 금연을 선언했다가 도저히 못 참고 한개비씩 사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현재 가치담배로 팔리는 것은 주로 디스(한갑당 1,500원)인데, 한개비당 150원을 받는다. 한갑을 통째로 사는 것보다 2배나 비싼 셈이지만, 금연파들에게 이 한개비의 유혹은 값으로 따질 것이 아닌 듯싶다. (굿데이신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