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여행'으로 선정된 잘 구워진 영광 굴비(좌상), 연탄불에 구워먹는 태백 한우(좌하), 경남 사천 봄 도다리(우).
남도의 넉넉한 인심 나주·굴비의 향연 영광
봄 도다리 경남사천· 연탄불 구운 태백 한우
오돌오돌 씹히는 봄 바다의 맛 당진 간재미
본지에서는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하는 국내 유명 여행지와 축제현장, 그리고 지역의 유명한 먹거리를 소개한다. 현대인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여행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삶의 질을 높이고 있다. 따라서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계절의 특성에 맞는 여행지와 축제현장과 먹거리를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혹독한 겨울 추위가 지나고 이제 따사로운 봄이다. 따뜻한 봄소식만큼, 시민들의 감성을 사로잡는 착한 먹거리들이 전국각지 식탁 위를 가득 채우고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맛있는 여행' 이라는 테마 하에 2012년 3월에 가볼 만한 곳으로 '맑은 국물에 넘쳐 나는 남도의 넉넉한 인심(전남 나주)', '미리 만나는 봄맛, 봄 도다리(경남 사천)', '마블링이 블링블링~ 연탄불에 구워 먹는 태백 한우(강원 태백)', '자연이 만들어낸 영광의 맛, 영광굴비(전남 영광)', '오돌오돌' 씹히는 봄 바다의 강렬한 맛, 당진 간재미(충남 당진)'등을 각각 선정, 발표했다.
◆ 남도의 넉넉한 인심… 전남 나주 금계동
나주목문화관에서 가까운 금성관이라는 나주객사가 있고 그 앞에 나주곰탕집들이 있다. 60년 전통을 자랑하는 남평할매집에 들어가면 커다란 가마솥에서 하얀 김이 피어나는, 모든 손님에게 시원하게 공개된 주방이 눈길을 끈다. 곰탕이 주문되면 주방장은 미리 밥을 담아놓은 뚝배기를 집어든다. 그 다음 설설 끓는 가마솥에서 국물을 떠서 밥이 담긴 뚝배기를 서너 차례 토렴(건진 국수나 식은 밥 따위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여 그 국수나 밥을 데우는 일)한다. 곰탕의 제 맛이 바로 이 토렴 과정에 숨어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찬이라고 해야 침이 절로 도는 김치와 깍두기가 전부이지만 진하고 고소한 곰탕에 이보다 더 잘 맞는 궁합은 없다. 뜨끈한 국밥 한 숟가락을 떠서 그 위에 빨간 김치나 깍두기 한 점을 얹어 먹으면 느끼한 맛은 전혀 없고 달콤하면서도 구수한 곰탕의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나주곰탕 전문 식당에서는 고기가 더 많이 들어간 수육곰탕과 수육도 맛볼 수 있다.
이번에는 나주시가지 남쪽의 영산포로 이동해서 나주의 두 번째 별미인 홍어를 맛보자. 옛 영산포 선창 주변에는 나주만의 독특한 숙성법으로 삭힌 홍어 맛을 보여주는 홍어 거리가 조성되어 코끝을 자극한다. 자연 발효되어 독특하고 절묘한 맛을 내는 웰빙식품인 홍어회는 코를 찌르는 냄새, 알싸한 맛부터 계속 씹으면 박하향까지 퍼지는 독특한 맛이 매력이다. 알칼리성 음식이라 체질개선, 다이어트, 피부미용에 좋다고 한다.
홍어요리 중 인기메뉴는 홍어회다. 홍어회와 돼지고기, 김치를 함께 먹는 것을 '홍어삼합'이라 한다. 여기에 막걸리가 빠지면 섭섭하다. 홍어찜은 홍어요리 초보자들이 홍어회에 도전하기 전에 먹기 좋은 요리다. 이 밖에 홍어의 애를 보리싹과 함께 넣고 끓인 홍어애보리탕은 맛이 깊고 시원하다.
◆ 미리 만나는 봄맛, 봄 도다리…경남 사천시 서동(삼천포항)
봄바람이 살살 불어오면 사천 삼천포항 어부들의 손길이 바빠진다. 제주도 근처에서 겨울 산란기를 지낸 도다리가 매년 3월쯤 삼천포 앞 바다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봄 도다리, 여름 민어, 가을 전어, 겨울 광어'라는 말이 있듯, 봄에는 도다리가 제일 맛이 좋다. 이즈음 멀리 반도의 끝자락 사천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유도 봄에 제철인 도다리가 있어서다. 사천의 항구 중에서 도다리를 만나기 쉬운 곳이 삼천포항이다. 경남 서부 연안어업의 중심지이자 우리나라 3대 어항의 하나다. 구항과 신항으로 이뤄져 있는데, 구항으로 행선지를 잡아야 도다리는 물론 항구 주변에 펼쳐진 어시장도 구경할 수 있다.
아무리 바다가 좋더라도 입이 즐거워야 여행길이 더욱 풍성하고 행복한 법. 삼천포에 와서 도다리를 놓칠 수는 없다. 삼천포어시장에는 상점, 좌판 할 것 없이 도다리가 주인공이다. 노점과 좌판, 포장마차가 늘어선 바닷가 쪽 도로변에서 싱싱한 도다리를 골라 회를 뜬다. 도다리는 뼈째 썰어내는 세꼬시로 먹기도 한다.
구입할 때는 어른 손바닥 만한 크기(15∼20cm 내외)가 좋다. 큰 것은 보기에는 좋아도 뼈가 단단해서 세꼬시용으로 적합하지 않고, 너무 작으면 살이 별로 없다. 산란기를 끝낸 도다리는 살이 꽉 차서 찰지고 쫄깃하다. 하얀 살과 함께 씹히는 뼈는 씹을수록 고소하다. 도다리는 광어와 비슷해서 자칫 혼동하기 쉽다. 구별법은 '좌광우도'라는 말처럼 도다리는 눈이 오른쪽에 몰려 있다.
봄의 향기를 오감으로 만끽하고 싶다면 도다리 쑥국이 제격이다. 도다리 쑥국은 전라도의 홍어 애탕에 비견되는 경상남도의 대표적 봄철 음식이다. 구수한 된장을 푼 뒤 파릇파릇한 해쑥과 도다리를 넣고 끓여내면 잃었던 입맛을 되찾는 것은 시간문제다. 된장국의 진한 맛과 쑥향의 절묘한 배합, 쑥과 도다리를 함께 먹을 때 입안에 감도는 쑥향과 도다리 속살의 부드러움이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맛으로 남는다.
◆ 마블링이 블링블링∼ 연탄불에 구워먹는 '태백 한우'
태백 한우의 명성은 탄광도시로 호황을 누리던 30∼40년 전부터 시작됐다. 석탄 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든 1990년대 이전만 해도 지나가는 개조차 만 원짜리를 입에 물고 다녔다고 할 만큼 경기가 좋았던 태백이다. 당시 광부들은 목에 낀 탄가루를 씻어낸다고 돼지삼겹살이나 소고기를 연탄불에 구워먹곤 했는데, 지금도 대부분의 식당이 연탄구이를 고수하며 태백만의 독특한 방식을 이어오고 있다.
원조격인 황지시장골목을 포함해 태백시에 약 40개 안팎의 한우식당이 있는데, 아무개 '실비식당'이라는 상호를 쓰는 집이 많다. 태성실비, 시장실비, 경성실비, 현대실비, 배달실비, 부흥실비… 하는 식이다. '실제 비용만 받고 판다'는 말뜻 그대로 갈빗살, 모듬, 주물럭, 육회무침, 육회 등 주요 메뉴가 모두 1인분 200g에 2만5천원이다.
물론 태백 한우골 식당처럼 상호에 '실비식당'이 들어가지 않은 집도 가격은 마찬가지다. 어쨌거나 서울 강남의 유명 고깃집들이 1인분 150∼180g을 5만원 넘는 가격에 내놓는 것에 비하면 반값에 불과한 셈이다. 고기 먹기엔 다소 이르다 싶은 오전 10시에 문을 여는데도 금세 문전성시를 이루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태백의 한우식당들은 대개 갈빗살이나 등심 외에 서너 종류의 부위를 조금씩 맛볼 수 있는 모듬 메뉴를 판다. 소 한 마리당 1.5kg∼2kg밖에 안 나오는 안창살을 비롯해 치맛살, 제비추리 등 고급 부위를 골고루 맛볼 수 있으니 굳이 등심, 갈비만 고집할 이유가 없다.
달고 시원한 배와 함께 살살 비벼 먹는 육회무침은 고소하기 이를 데 없고, 기름기 하나 없는 우둔살을 얇게 저며 고추냉이간장에 찍어 먹는 육회는 씹을수록 감칠맛이 제대로다.
◆ 지역이 만들어낸 영광의 맛, 영광굴비
조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생선일 듯하다. 크기가 큰 조기는 잘 손질해 제사상에 올리고, 조금 작지만 싱싱한 조기는 그대로 탕을 끓이거나 잘 구워 밥상에 올린다. 너무 작아 생선 한 마리로 먹을 수 없는 조기와 손질한 내장은 젓갈을 담아 사용하니 버릴 것이 없다. 싱싱한 조기도 많은 사랑을 받지만 그보다 더 사랑받는 것은 조기를 살짝 염장해 말린 굴비다.
하지만 굴비의 소비량이 많아진 지금은 봄철 조기로만 굴비로 만들 수 없어 연중 잡히는 조기를 모두 수매해 사용한다. 수매한 조기는 즉시 냉동 저장한 후 하루 작업량만큼 해동해 굴비로 만들고 있다.
조기가 굴비로 변신하는 과정에는 꽤나 많은 시간과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제일먼저 필요한 것은 굴비의 맛을 좌우하는 소금이다. 법성포에서는 영광에서 생산된 천일염을 사용한다. 여기에 조기의 비린 맛을 잡아줄 수 있는 저마다의 비법이 더해져 상품으로 완성된다.
조기의 크기에 따라 염장시간을 6∼24시간으로 조절하는 것도 맛을 일정하게 하는 비결이다. 염장이 잘 된 조기는 두름으로 엮은 후 맑은 물에 씻어 더 이상 소금이 생선 안으로 배어들지 않게 한다. 이후 잘 말려주면 굴비가 완성된다.
요즘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완전히 말린 굴비보다 촉촉함이 살아있는 굴비를 더 선호한다. 때문에 어디서든 완전히 건조된 전통굴비가 아닌 염장굴비를 더 쉽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옛 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바싹 말린 전통굴비를 쌀뜨물에 담갔다가 쪄내는 굴비찜을 영광굴비 최고의 맛으로 손꼽는다.
◆ '오돌오돌' 씹히는 맛, 충남 당진 간재미
봄 입맛이 뚝 떨어졌을 때에는 충남 당진으로 핸들을 돌리자. 당진의 봄 포구에는 오돌오돌 씹히는 맛이 일품인 해산물들이 쏟아진다.
당진에 왔으면 일단 싱싱한 간재미 회무침을 그냥 두고 떠날 수 없다. 3월 당진에서는 간재미가 제철이다. 2월말부터 본격적으로 잡히기 시작한 간재미는 5월까지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는다. 6월이 지나 알이 들면 살이 뻣뻣해져 먹는 맛이 다소 떨어진다.
장고항에는 20년 된 등대횟집 등 10여 곳의 횟집들이 간재미를 주 메뉴로 식탁위에 올린다.
장고항의 간재미는 예전처럼 그물을 이용하지 않고 낚시를 이용해 건져 올린다. 배를 타고 10∼20분 거리의 근해가 간재미를 잡는 포인트다. 흥미로운 것은 간재미는 수놈보다는 암놈이 더 부드럽고 맛있다는 것이다. 수놈은 꼬리가 양갈래로 뻗어 있고 암놈은 꼬리가 한 가닥이다. 초보자라도 간재미의 암수를 구별하는 게 어렵지는 않다. 같은 값이면 암놈으로 잡아달라고 주문하는 것도 요령이다.
도마 위에 오른 간재미는 껍질을 벗겨낸 뒤 오이, 당근, 고춧가루, 물엿, 식초 등에 버무려져 회무침으로 변신한다. 그냥 날회로 먹는 경우는 드물다. 간재미무침의 감칠맛을 위해서는 싱싱한 간재미는 필수. 여기에 양념을 버무리는 주인장의 손맛이 더해져야 한다. 식당에 따라서 청양고추를 넣어 매콤한 맛에 힘을 주는 곳도 있다.
간재미무침 한 점을 입에 물면 다른 회와 달리 씹는 맛이 강하게 전해진다. 부드러운 살점 한 가운데서 오돌오돌 씹히는 회맛은 봄 야채들과 곁들여져 향긋하게 입 전체를 감싼다. 간재미무침은 2∼4인분에 3만원선.
간재미와 함께 이 일대의 해산물로 입을 즐겁게 하는 메뉴는 굴밥과 실치회다. 인근에서 나는 굴이 3월초를 기점으로 이별을 고하면 3월 중순부터는 실치회가 식탁 위에 오른다. 실치는 3월초에는 육질이 연해 회로 먹기 적당하지 않다. 성질이 급해 잡히면 이내 죽는 실치는 된장국에 넣어 먹어도 별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