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입구역, 장충단역 병행도 요구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현충원인 장충단을 원형대로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끌고 있다.
장충단복원 범국민추진위원회 준비위원들은 지난 7일 국가인권위원회서 (사)역사복원국민운동본부(상임대표 송태경)가 주최한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장충단 복원'이라는 학술토론회에서 이같이 주장하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정부는 신라호텔로부터 장충단 부지를 회수하고 최초 국립현충원이었던 장충단을 원형대로 복원하라 △민·관합동 장충단복원 범국민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라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을 장충단역과 병행해 사용하라 △남산공원을 원래대로 장충단 공원으로 환원하라 △신라호텔은 장충단 복원에 앞장서라 △일본은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만행에 대해 즉각 사죄하라 등 6개항을 제시했다.
1895년 10월 8일 일제가 대한제국의 국모인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국권을 침탈해 민족의 왕실과 자손심을 짓밟은지 116년이 됐다.
왜왕 직속의 최고통수기관인 대본영(大本營)에 의해 저질러진 국가범죄였음이 명백하게 밝혀졌는데도 불구하고 사죄하라고 하는 사람이나 사죄하는 사람도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장충단은 명성황후 시해사건 당시 순국한 충신과 열사들의 충정을 기리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1900년 9월 대한제국의 고종황제께서 '장충단'이라는 제단을 설치한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서울의 남쪽을 지키는 남소영(南小營) 자리에 장충단을 짓고 봄, 가을로 제사지내게 했으며, 이후에는 임오군란, 갑신정변 때 사망한 문신들도 포함됐다.
1909년 이토오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에게 척살된 이후 장충단에서 이토오의 추도식이 거행됐다. 1919년에는 장충단 일대에 벚나무를 심어 일본식 공원을 조성하고 일본군 육탄 3용사의 동상을 세웠으며, 1932년 이토오 히로부미를 추모하기 위한 절인 박문사가 세워졌다.
해방 후 일본군의 동상과 박문사는 철거됐지만 장충단은 아직까지 복원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일제가 우리의 민족정기를 끊기 위해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었듯이 우리나라 최초의 현충원이라 일컬어야 할 역사적 장소를 위락시설로 전락시켰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지금은 자기 자리를 잃어버린 외로운 비석 하나만이 있을 뿐이며, '장충단 공원'이라는 이름은 '남산공원'으로 개명돼 장충단이라는 단어마저 없어 질 지경에 이르렀다고 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