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부터 37년 째 침술의 대가로서 소문이 자자한 회현동 낙원침술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 중구지회 한방희(61) 회장.
한 회장은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 장애인이지만 자신 앞에 있는 사람을 구별할 줄 안다. 따라서 한 회장 앞에 서면 일단 거짓말을 하는 것은 용납이 안 된다.
눈이 아닌 손끝으로만 환자를 진맥하는 일을 하고 있는 한 회장은 사람의 손목만 짚어도 이 사람이 어떤 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가를 맞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혼란기였던 1949년, 전북 임실군 오수면에서 출생한 한방희 회장은 4세 때 홍역을 앓다가 그만 시력을 잃었다.
"67년도에 서울에 올라와 종로구에 있는 국립서울맹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했고, 졸업 후에는 한의원에서 본격적으로 침술 공부를 했습니다."
침술원을 운영하면서 주로 찾아오는 환자들의 대부분은 어깨, 허리, 다리가 아파서 찾아온다. 생업에 종사하느라 자기 몸을 돌볼 여력이 없는 서민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한 회장은 이들을 맞이할 때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외부에서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기도 해요. 재미교포나 필라델피아, 미국같은 외국도 마찬가지고, 여수, 광양, 대전 같은 지방에서도 일부러 찾아 올라오기도 합니다."
한 회장이 처음 진료를 맡은 환자는 친척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다리가 너무 시리고 저려 잠을 못자는 상태였는데 한 회장의 진료를 받고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그때부터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 지금까지 한 회장을 찾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다는 것.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제가 3번째로 침을 놔 드린 67세 되신 분이었는데, 시골에서 밭에 나갔다가 동산에서 미끄러져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있기만 했던 환자였어요. 움직이지 못하자 제가 직접 가서 보름정도 치료를 해줬어요." 당시 학생 신분이었던 한 회장의 말끔한 치료로 사람들이 좋아했음은 물론 본인도 자신감을 얻게 됐다.
그러나 승승장구했을 것 같은 한 회장도 어려운 시절은 많았다.
"졸업은 했으나 집이 어려워서 치료실을 내지 못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을지로2가에서 월세로 치료실을 간신히 얻었는데 오전에는 침술을, 오후에는 안마를 하면서 결국 남산동2가에 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시절 자신을 도와주고 일어서게 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지금 한 회장은 무료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맹인교회 장로이자 샬롬중창단 단장이기도 한 그는 8명의 시각장애인과 함께 조직을 구성해 25년째 의료선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김금순(60)씨와의 사이에서 1남1녀를 두고 있다는 한방희 회장은 현재 중구시각장애인복지관장, 한국시각장애인 침사협회 이사, 서울시각장애인 복지연합회 서울지부 지회장단 협의회장 등을 맡고 있다. "비록 보지는 못해도 사람을 마음으로 진료하고 그들을 진심으로 대하며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것이 저의 소명이자 보람입니다. 사람들이 생활이 어렵더라도 이겨내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