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고/성울 리슨신 연구소장 이인섭(하)

천안함 사건과 리순신 제독의 당항포 전술 교훈

류삼남 박사께서 해군참모총장 시절에 반잠수정 침투사건이 있었다. 음력 11월 19일 오전에 노량바다 이락포에서 "리순신 제독 진혼제"를 전직 현직 참모총장님과 리순신 연구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올린 적이 있다. 바로 그날 밤에 북한의 '반잠수정' 침공으로 여수 앞바다에 몰래 숨어들어오다가 감시병의 탐망경에 걸려 쫓겨서 공해로 도망쳤다. 해군과 해경이 추격해 공해에서 300미터 수심해저에 침몰시켰다. 그날 밤 담당 감시병의 빛난 눈동자가 환하게 바다를 밝게 감시한 덕분에 순간 '북한 반잠수정 침입'을 발견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 순간을 놓쳤으면 반격할 수도 없었고 상륙하여 여수시를 공격했을지, 무슨 흉계를 간첩과 연계해 꾸몄을지 모를 일이다. 죽은 적군은 입을 열지 않아 흉계를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그 반잠수정은 인양되어 지금 연구하고 진해 모처에 전리품으로 전시해 놓았다.

 

우리는 일본인들이 그들의 조상 선열을 배우는 태도와 비교하면 사뭇 다른 것이 있음을 본다. 일본은 임란이 끝난 즉시 기획하여 6년후부터 '풍신수길(豊臣秀吉)과 가등청정(加藤淸正)'의 동상과 기념관을 세우고 임란의 전승과 패전을 분석하고 그들의 정신과 공적을 찬양하고 300년간을 국민정신 일치교육으로 아름다운 교훈으로 꾸미기에 관과 민의 학자가 일치되었다. 이후 307년이 지난 후에 한국을 다시 침략하여 무혈합방으로 일본식민지로 만들 수 있었던 힘이 여기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리순신 제독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신 후 선조도 '제문을 지어 자기 잘못을 후회' 하고 충무(忠武)라는 시호를 내려 추모하는 제문을 지어주었으며, 승전했던 각처마다 정성 드려 리순신 제사를 올렸었다. 그러나 그것뿐이다. 리순신 제독의 전략과 전술을 연구하고 배우려는 자료를 모우는 기념관은 하나도 짓지 않았다. 단지 정조대왕 때에 특집으로 '리충무공전서'를 편찬해냈을 뿐이다. 교실 없는 교육이 있을 수 없고, 교재 없는 교육은 성공하지 못한다. 리순신 제독을 해신(海神)으로 추대한 것도 일본 '도고 원수'가 추종하고 숭배했던 데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가 리순신을 받드는 제사만으로는 국방전략이나 군사전략전술을 교육생들에게 살아있는 교육으로 활용될 수 없고, 국가의 장래를 짊어질 2세들에게 호국정신의 핵심을 가르치는데 전혀 도움을 줄 수 없다.

 

당항포해전에서 쓴 전술 "?察賊船 登時馳告" 이 8자는 현대에도 반드시 필요한 말이며 반드시 적용되어야 할 명언이다. 이번상황은 우리 영해의 해저(海底)와 하늘 위까지 적의 동태를 환하게 밝혀 적의 현황을 파악하고 있는 우리 해군의 경계상태를 항상 유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 것이다. 모든 해군전투함과 육군, 공군의 정찰 장병에게도 이 8자 교훈은 절실히 요구되는 복무지침이요, 전술로서 아군이 적군보다 한치 앞선 작전을 펼 수 있는 교훈이 많으니, 리순신 제독의 전술교훈을 깊이 연구해야 한다.

 

적선(敵船)의 움직임을 먼저 살펴야 한다. 그들의 목적은 아군을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움직임은 우리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그 움직인 이유를 먼저 알지 못하면 우리가 당할 수밖에 없다. 우리 영해를 침범하여 공격한 적군의 행위는 선전포고 없이 벌이는 비열하고도 비겁한 전쟁이다. 천인공노하고도 통분할 일이다. 있어서는 안 될 희생을 앞으로는 다시없도록 해야 한다.

 

상선보호라는 명분으로 제주도 우리영해를 반잠수정이 탐색하고 있을지 모른다. 적에게 정보를 알려주는 것은 나를 침공하라는 신호와 같다.

 

군사기밀 전함들 내부가 이번에 공개되었으니 조선소의 새조치도 전술의 분야라고 판단된다. 이를 '미연에 방지할 방어전술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언제나 선제공격 당하게 될 것이다. '적군의 선수(先手)에 뒤지는 아군은 후수(後手)로 언제나 피해를 당한다는 전술을 일깨워 준 교훈' 이라 생각하고. 46위 전사를 우리 모두의 가슴에 새겨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한다. (2010.4.25. 서울시광장합동분향제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