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고 / 중구의 문화 ③ / 이 장 민 충무아트홀 문화사업팀장

"문화도시로 가는 길"

요즘 지하철을 타면 색다른 즐거움을 느낍니다. 콩나물시루 같은 전철에 몸을 맡기는 것이 여전히 불편하지만 기분은 예전보다 상쾌합니다. 전철이 빨리 오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도 줄었고, 왠지 낯선 사람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지하철이 조금씩 문화의 옷을 입기 시작하면서 나타났습니다. 바쁜 아침 출근길에 귀에 익숙한 클래식 선율이 지하철 역사에 울리면 분주한 마음은 평온해집니다. 퇴근길,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적힌 시(詩) 한 편은 즐거운 상상 속에 빠져들게 합니다. 이처럼 지하철이 문화공간이자 예술쉼터로 바뀌면서 삶이 풍부해집니다. 좋은 변화이자 아름다운 경험입니다. 문화와 예술을 일상의 삶 속에서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 공연장에 가지 않더라도, 긴 줄을 서가며 대형 전시회에 가지 않더라도 음악을 듣고 문학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삶을 빛내는 값진 선물입니다.

 

최근 문화도시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습니다. 외국의 문화도시들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부러움과 찬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문화기획이나 예술경영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외국의 문화도시를 학습하고 한국에 적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지방자치단체는 엄청난 예산을 들여가며 도시의 매력도를 높이고자 축제를 열고 공연장을 지으며 박물관도 유치합니다. 문화를 통해 도시의 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예술을 통해 도시의 품격을 높이는 일에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습니다. 우리 중구도 문화도시를 만드는 작업을 다각도로 펼치고 있습니다. 공연장이나 도서관과 같은 하드웨어를 짓고 축제나 문화행사를 지속적으로 열며 주민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화도시로 가는 올바른 길은 무엇일까요? 문화도시는 유명한 축제나 저명한 공연장, 미술관이나 박물관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구겐하임미술관이 들어선다고 하루아침에 문화도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호주 오페라 하우스가 생긴다고 문화도시로 불리는 것이 아닙니다. 문화도시는 철저하게 주민들이 문화를 일상의 삶 속에서 즐기고 공동체 속에서 나누며, 직접 예술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문화생산의 주체로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주민들 스스로가 지역문화의 여론을 만들어나갈 때 문화도시의 기반은 형성됩니다. 밥 먹고 TV 보듯이 음악을 듣고, 산책 가듯 도서관을 드나들며 공연장과 갤러리를 삶 속으로 끌어들어야 합니다. 도시자체가 하나의 문화공간이자 예술작품으로서 문화예술의 향기가 넘쳐야 합니다.

 

이웃나라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 문화도시에 대한 철학과 지역문화에 대한 비전을 오래전부터 고민해왔습니다. 지역문화경영이라는 학문이 체계적으로 발전해 학제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축제를 뜻하는 '마쯔리'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주민을 화합과 소통의 장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이 축제들 대부분이 주민이 스스로 비용을 대고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무대를 채운다는 것입니다.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축제를 만드는 전통이 도시 전체로 번져 문화민주주의가 정착됐고, 도시를 이루는 모든 것에 주민의 참여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도시전체가 하나의 문화공간이자 예술의 창작공간이며 지방자치를 구현하는 도구입니다. 결국 문화도시를 만들어가는 것은 주민입니다. 주민이 맑은 눈으로 문화공간이 잘 운영되는지 감시하고, 축제가 가치와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민이 삶 구석구석에서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문화정책에 참여하고, 도시정책에 의견을 개진해야합니다.

 

동네의 물리적·공간적 환경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도 적극적으로 나서야합니다. 도시자체를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빛내는 것은 주민의 의지가 열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문화도시,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