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고 / 중구의 문화 ① / 이 장 민 충무아트홀 문화사업팀장

"문화적인 삶이 행복이다"

얼마 전 법정스님이 입적하셨습니다. 맑고 향기로운 글과 투박하지만 진실한 목소리로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정갈하게 했던 스님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슬펐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애도하는 가운데 스님은 무지갯빛 가득한 봄의 햇살 속으로 떠나셨습니다. 법정스님의 존재가 왜 그토록 크고 무겁게 느껴지는 걸까요? 왜 많은 국민들이 스님의 글과 말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요? 그것은 바로 물질과 탐욕에 갇힌 우리에게 정신과 영혼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셨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더 높이 올라가려고 합니다. 경쟁은 끝없이 치열하고, 1등만 살아남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물질은 많아지고 풍부해졌지만 삶은 팍팍하고 허전합니다. 여전히 성장과 개발에 목매며 우리가 간직해왔던 무형의 가치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물질의 풍요가 정신의 빈곤으로 이어지는 이 기괴한 현실 앞에 우리는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민족은 엄청난 문화적 저력과 창조성을 지녔습니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와 예술은 세계적으로 독창성을 인정받으며 우리나라를 품격 높은 문화국가로 이끌었습니다.

 

조선시대의 궁중음악인 수제천이나 영산회상과 같은 음악에는 높은 문화적 이상향과 정신이 담겨져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활동했던 김홍도와 장승업의 그림에는 붓으로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예술적 경지가 그려져 있습니다. 또한 18세기 중구 무교동 일대에서 활동하며 학문과 지식을 탐구한 연암 박지원은 한국 지성사의 보물인 '열하일기'를 통해 삶에 대한 깊은 철학적인 사유를 기록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고매한 문화와 드높은 정신을 지닌 민족이었습니다. 한일합방과 6·25전쟁을 거치고, 압축적인 경제성장으로 인해 우리의 가치는 급격하게 물질화·서구화되면서 드높았던 문화와 정신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다시 정신을 채우고, 영혼을 보듬으라고 스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문화적 삶이란 내면에 꼭꼭 숨은 정신과 영혼을 다시 불러내는 일입니다. 맑은 정신과 영혼을 이웃과 나누고 더불어 즐기는 것입니다. 정신을 가꾸는 가장 좋은 것이 문화이고, 영혼을 빛내는 가장 좋은 것이 예술입니다. 화사한 목련을 배경으로 흐르는 클래식 한곡이 정신의 묻은 때를 벗깁니다. 나른한 봄날 오후, 다소곳한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시 한편이 영혼을 적십니다.

 

봄비 내리는 밤에 찾은 연극무대는 감성을 샘솟게 합니다. 오랜만에 미술관을 찾아도 좋고, 주말에 가족이 함께 축제를 즐겨도 좋습니다. 일상적으로 누리는 습관의 틀을 깨고 보다 다양하고 창조적인 문화를 즐길 때 정신과 영혼은 깊어지고 굳건해질 것입니다.

 

요즘 아침과 저녁으로 TV에서 막장드라마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드라마가 동 시대의 사회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막장드라마를 버리고 온 가족이 다 함께 잔잔한 클래식으로 아침과 저녁을 맞는 것은 어떨까요?

 

문화적 삶은 보다 맑고 향기로워지기 위해 과감하게 버리고 다양하게 즐길 때 시작됩니다. 흐트러진 봄 날, 문화가 충만할수록 우리의 행복은 더욱 가깝게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