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남산 국사당 복원에 동참해야

일제에 의해 훼손되고 인왕산으로 강제 이전됐던 국사당을 복원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남산 기슭 남산동에 위치한 국조 단군을 모시는 남산 천제단에서는 음력으로 10월3일인 지난 19일 개천절 천제를 봉행하고, 이 자리에 모인 국학 연구자와 교수 등 의식(儀式) 참여자들은 일제에 의해 남산에서 강제 철거된 우리고유의 문화유산 국사당을 복원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조만간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남산 자락에서 20여년간 단군을 모셔온 남산 단군성전 천제단은 지난 2005년 10월14일 화재로 소실 위기에서 주민들의 후원으로 복원됐지만 아직도 국조 단군을 모시기에는 열악한 상황이다.

 

 단군성전을 지키고 있는 신복동 원장은 제대로 된 성전 복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4층짜리 자신의 건물을 조건 없이 내놓았다. 주위를 매입해 국사당을 복원하고 후대에 계속 전승토록 해야 한다는 일념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사당을 복원하면 민족정기를 복원하는 의미와 함께 지역사회의 명소로 부상함으로써 지역에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국사당은 조선시대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한양의 수호신사(守護神祠)로 북악신사(北岳神祠)와 함께 남산 꼭대기에 두었던 목멱신사(木覓神祠)의 사당이다.

 

 1925년 일본인들이 남산(분수대 자리)에 일본신사인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지을 때 신궁보다도 위에 있다는 이유로 협박으로 종용해 건물을 헐어 편액(扁額)과 사당의 일부를 인왕산으로 옮겼다고 한다. 인왕산은 국사당을 헌 그 재목으로 현재의 위치에 건립했는데 후면과 우측으로 내몰린 것 외에는 형태나 구조를 남산의 건물 구조와 같게 했으며, 현재의 위치로 택한 것은 조선시대 진산(鎭山)의 기슭이며, 무학대사를 모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산 국사당이 있던 그 자리에는 현재 팔각정이 들어서 있는데 한강을 향해 서남향으로 지었다고 알려졌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조 4년(1395) 12월29일에 이조에 명해 남산을 목멱대왕으로 봉하고, 태종 4년에는 호국의 신으로 삼았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목멱신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목멱신사는 목멱산 꼭대기에 있었고, 해마다 관에서 봄, 가을에 초제를 행했기 때문에 일반에서는 국사당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이처럼 민족의 얼이 살아 숨쉬는 남산에 팔각정을 헐고 그 자리에 국사당을 복원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면 남산천제단에서 내놓은 부지에 국사당을 복원하는 것도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데 있어서 매우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따라서 민간 복원추진위와 함께 중구와 서울시에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민족정기를 복원하는데 동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