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안중근 의사는 32살의 젊은 나이에 순국하셨다.
안중근 의사는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셨다. 처음에는 한학을 공부하였으며, 17세에 천주교에 입문하여 도마라는 세례명을 받고 신지식을 배웠다. 삼흥학교를 건립하여 인재양성을 통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나, 고종황제의 강제 퇴위와, 외교권 박탈 등 일본의 침략정책이 점점 노골화되자, 뜻을 바꾸어 러시아로 망명, 의병활동으로 하루 빨리 주권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1909년 10월 26일 이토히로부미를 총살한 하얼빈의거 후 안의사 의거로 불리한 여론이 형성되는 것을 꺼려했던 일본은 이듬해 3월 26일 안 의사를 처형하였다. 일본은 변호사 선임도 거부하고 국제법도 무시한 체, 단 5개월 만에 재판을 끝냈다.
안의사는 사형 언도 후에도 재판의 부당함에 대해 상고 할 수 있었으나, 일본 법정에 생명을 구걸하기 보다는, 조국을 위한 거행된 의거의 뜻을 살리고 나라를 위해 영광스러운 죽음을 선택하였다.
오는 26일은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되는 날이다. 요즘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지 못하며 사는 것 같다. 과거의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은 교과서에서 만나는 인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역사를 통찰하지 않는 민족은 미래로 전진할 수 없다고 했다.
100년 전 우리민족에게 민족독립의 큰 희망을 안겨 준 안중근 의사! 안중근 의사의 그 꺾이지 않는 기개, 사그라들지 않는 독립에 대한 열정이 현재 우리 삶에 다시 한번 큰 물결을 일으킬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