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정칼럼 / 김 기 래 중구의회 의장

소신(所信)에 대한 단상(斷想)

"도요새의 멀리 높이 나는 기개 본받아 값진 발자취 남기겠다"

 

 최세진의 ‘훈몽자회(訓蒙字會)’에는 도요새에 대한 짤막한 언급이 있다. 일종의 섭금류의 물새인 도요새는 얕은 물을 걸어다니며 물고기를 잡아먹고 사는 새로, 훈몽자회에서는 도요새의 옛말이 물속에 우뚝 서서 물고기를 기다리며 사냥을 준비하고 있는 새매를 나타내는 도요(嶋 )에서 비롯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동안의 의정활동, 그리고 걸어왔던 걸음의 발자취를 돌아보게 했던 우연한 계기는 도요새에 대한 고찰에서 발로했다. 도요새는 물에 떠다니며 사냥하는 갈매기와는 달리 부리가 길고 날카로워, 물을 걸어 다니면서 물고기나 벌레를 사냥한다고 한다.

 

 또한 호주에서 시베리아의 번식지까지 1만3천km를 날아갈 수 있을 정도로 도요새의 날개는 크고 강해 가장 멀리 이동하는 조류라고 알려져 있다. 짐작해 보건대, 몸은 작지만 멀리 혹은 높이 날며 자신의 그림자를 생각하고 월동기를 준비할 줄 아는 도요새의 기개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서울의 중심, 중구에서 자치구의원으로서 의정활동을 펼쳐 온지 벌써 3년이 되어가고 있다. 남은 1년의 기간에는 그 동안의 의정활동을 돌아보고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멀리 바라보며 중구의 발전을 뒷받침할 줄 아는 기개를 펼쳐야 한다고 다짐했다. 필자의 사무실 중앙에는 신당2동의 스님께 사사 받은 “정승(正勝)”이라는 글귀의 액자가 걸려있다. 당시에는 이 글귀에 담긴 의미를 예사롭게 넘겼으나, 의정활동의 햇수가 늘어날수록 곰곰이 되새기게 되는 의미임을 후에는 더욱 깨달을 수 있었다.

 

 상호간의 소통과 이념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다수를 대변할 수 있는, 보다 논리적이고 공감가는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은 새로이 언급할 필요가 없는 당연한 원칙이다. 이 원칙은 주민의 복지(福祉)가 최우선이며, 행정이 합리적이고 적합하게 시행되어야 한다는 나의 의정활동의 원칙으로까지 발전되었다고 생각한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이나, 입문하고 난 뒤에도 끊임없이 나의 발걸음을 이끌었던 것은 바로 합리적 보수를 구현하기 위한 방안을 찾는 것이었다. 보수와 진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것을 강조하는 흑백적인 편가르기만이 능사는 아니며, 진정한 의미의 보수란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결연히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사회의 공동체를 결속시키고, 질서와 준법정신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의연하게 이를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합리적 보수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잘못된 관행을 유지하면서 자신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견제하고,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이용해서 이를 권한유지를 위한 수단으로만 전락시키려 하는 사람들에게는 보수를 자처할 자격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다수의 목소리를 대변해서 질서유지를 위해 상호 소통하고 토론하는 자세가 없이, 독단 혹은 공정한 절차를 밟지 않는 권한 역시 보수를 자처할 자격이 없는 것은 물론이다.

 

 그것과 아울러 내가 생각하는 자치구 의원으로서 지켜야 할 합리적 보수란, 지역의 발전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안목을 갖추어서 주민과의 상호소통을 통해 지역의 현안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진정성을 갖춘 노력과 의지이다. 의정활동 중 이러한 합리적 보수를 지키기 위한 나의 원칙은 집행부와의 관계에서도 예외 없이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체인질링(Changeling, 2008)’은 부당한 법 집행으로 인해 희생되는 유괴된 아들과 그 어머니를 다루었던 영화다. 그리고 그 어머니는 아들을 찾기 위해서 당시 부패한 LA경찰이라는 거대한 집행기관의 전횡과 홀로 맞서 싸우게 되는데, 놀랐던 점은 그 영화가 당대 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일을 재구성한 영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면서 공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그리고 공권력이 견제되지 않을 경우 개인의 소중한 권리가 지켜지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했다. 사실 의회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다 보면 집행부와는 상호간 견제가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오직 구민의 편에서만 바라보아야 하는 구민의 대표로서, 또는 입법기관으로서의 의회의 입장은 집행부와는 그 근간부터 견제의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는 자조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구민을 위한 행정, 구민이 행복한 행정, 구민이 일상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행정 그리고 구민이 미래에 대해 불안함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행정이야말로 의정활동 중 선택해야 할 ‘합리적 보수’이므로 집행부에게는 사사로운 감정이 아닌 휘어지지 않는 공정한 잣대를 들이대야 할 것이다.

 

 의정활동을 하면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철학을 믿고 도요새의 멀리 그리고 높이 나는 기개를 본받아, 더욱 값진 발자취를 남기겠다는 진정성만을 발휘할 것을 다짐해 본다.

 

 옳은 것을 따르고 선택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지난 3년여의 활동속에서 깨닫게 되었다. 김구선생의 말씀처럼 내 뒤를 걷는 이들을 위해 눈길에서조차 곧은 걸음을 걸어나갈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여전히, 정정당당한 정승(正勝)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