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국보훈의 달 특집 / 유관순 친구 남 동 순 원로회장

조국독립에 평생을 바친 '여전사'

“우리나라가 광복됐다는 뉴스에 가회동 집에서 맨발로 종로까지 달려 나가서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어. 내 동무 관순이의 나라가 사무치게 자랑스러웠지” 지난 17일, 한국부인회 중구지회와 대한노인회 중구지회의 자매결연 23주년 기념식서 송용순 회장에게 나라와 민족을 위한 지대한 활동으로 공로패를 받은 남동순 원로회장.

 

 호국보훈의 달인 6월, 호국영령들의 명예는 드높지만 그들의 존재와 의미가 잊혀져 가고 있는 것 같다는 남 회장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남동순 할머니는 105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유달리 큰 목소리와 정정한 자태로 신익희 선생이 3.1운동 직후 결성한 독립운동단체 '7인의 결사대'로 연해주 중국, 몽골을 바람처럼 누빈 그 시절 여전사의 모습을 짐작케 했다.

 

 "3.1운동 당시 산간 충청도 지방은 일대가 다 불바다였고 나는 서대문 형무소에 끌려가면 매섭게 맞았어. 그 때는 남녀노소,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한마음 한 뜻이었지" 그는 3.1운동 만세운동으로 순국한 유관순 열사와 6살 적부터 알고 지낸 소꿉친구이자 이화학당 동창이다. 둘이 함께 있으면 두순이라고 불릴 만큼 절친했다고. 그는 "관순이는 새암(샘)많고 영특한 아이"였다며 "고문으로 꽃다운 열아홉에 죽은 관순이가 못 다한 일은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길로 교복도 안 벗고 시작한 독립운동은 무장 투쟁부터 독립군의 옷을 꿰매는 일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남회장은 광복후 박순천, 임영신등이 이끌던 독립촉성애국부인회와 대한애국부인회 등의 임원으로 활동하며 여성 계몽활동에 헌신했다. 6·25전쟁 직후인 1953년엔 유산을 팔아 서울 낙원동의 50칸짜리 가옥을 구입, 한미고아원을 설립하고 1천여명의 전쟁고아를 돌보는 등 사회봉사에 일평생을 바쳤다.

 

 현재는 (사)3·1 여성동지회 명예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남여사는 이같은 공로로 그동안 국민훈장 목련장을 비롯해 3·1정신대상, 문화시민상 등 40여개 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남회장은 "남편 없고 자식 없다고 날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데 난 이만하면 잘 살았다고 생각해. 어느 부모가 1천명 자식들이 있겠어"라며 미소를 지었다. 한편 남회장은 “광복이 된 지금 21세기는 슬기로운 여성이 되야 하는데 요즘 여성들은 지위는 향상됐지만 겸손함을 모른다” 며 “남성는 입법을 해야하고 여성는 행정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부인회 서울시 지부와 중구지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송용순 회장에 대해 고마운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남회장은 “독립을 위해 활동한 부인회 등 단체들을 사회에 알리며 여성관련사업과 봉사에 활발한 송회장에 평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조국광복과 소외된 이들을 위한 활동에 평생을 바쳤던 남 회장은 “우리 후손들이 조국을 위해 몸 바친 호국영령들의 업적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