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고 / 김 정 순 서울지방보훈청 홍보담당

임정요인들의 암행

4월13일은 상해에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이다. 임시정부 수립일이 4월 11일이라는 학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기념일을 옮겨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한 일일까 하는 생각이다. 의견의 차이일 뿐,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아 독립을 이루기 위한 투쟁과 희생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잊지 않기 위해 기념하는 일이 중요한 게 아닐까.

 

 흔히 임시정부를 이야기할 때 우리나라 최초로 민주주의 이념에 따라 삼권을 분립하고 민주공화제를 실시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임시정부의 진가는 희망이 보이지 않던 시기에 조국독립이란 실낱같은 빛을 밝혀 주었고, 5천년 역사 속에 비록 주권은 빼앗겼지만 임시정부를 통해 한민족의 명맥을 중단 없이 이어올 수 있게 한 점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인 이유로 일주일에 한번씩은 국회의사당 앞을 지나가게 된다. 웅장한 건물과 조경들을 보면 직업적인 이유에서인지 사진으로 접한 임시정부의 청사가 떠오른다. 한 칸 남짓한 크기의 초라한 사무실 모습이며, 임대료도 내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던 당시와 비교해 보며, 그때의 임정요인들이 오늘날 국회의사당과 정부청사를 보면 얼마나 감탄해 할까?

 

 가끔씩 재미있는 상상을 해본다. 어느 날 저승에 계신 임시정부 요인들이 목숨을 걸고 되찾은 나라를 후손들이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암행을 나오셨다. 기억에 남아 있는 옛날의 한성거리는 너무 많이 변해 예전의 흔적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고, 어려운 걸음을 했는데 그냥 돌아가기도 그렇고 해서 다른 것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러나 마땅히 어디를 가야할지 몰라 고민하다가 옛날에는 가난하고 쫓겨 다니느라고 변변한 사무실 하나 없었는데 후손들은 어떤 사무실에서 국정을 펼치고 있는지 한번 찾아가보기로 했다. 그래서 마침내 국회의사당과 정부청사를 찾아왔는데, 너무 크고 웅장한 외관과 잘 가꾸어진 조경 등 화려한 시설에 놀라셨다. 후손들이 부강한 나라로 잘 만들어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어 흐뭇하게 여기시며 내부를 한 번 살펴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만 너무 많은 방과 회의실에 감탄을 하고 이방 저방 다니다가 서로가 길을 잃고 말았다. 엘리베이터 작동법도 모르는 이 분들은 서로를 찾기 위해 이름을 부르며 헤매다가 겨우 만나 한바탕 웃고 자신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뿌듯해하며 그날의 암행을 행복하게 마무리 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상상해 본다.

 

 그렇다. 89년 전과 그 후의 달라진 모습이다. 제대로 된 사무실도 없이 주먹밥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오로지 조국의 독립만을 위해 희생하셨던 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이어져서 부강한 나라 선진 대한민국을 후세에 물려줘야 이다음 암행을 나왔을 때 행복해 하며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