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고 / 데이비드 펙(David Peck)

중구에서의 아름다운 기억

 

제 이름은 데이비드 펙(David Peck)입니다. 미국 아이다호 주 포카텔로가 고향입니다. 제가 한국에 처음 온 것은 50년 전 일입니다. 당시 스무 살의 나이에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선교사로 한국 땅을 밟은 것입니다.

 

당시 저희 한국 교회는 규모가 매우 작아서 성도 수가 몇 천 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북한과의 전쟁을 겪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경제는 처절하리만치 열악한 상황이었습니다. 벽안의 저는 당장 한국 음식과 문화에 적응해 가야 했습니다. 불고기, 밥, 김치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제가 김치를 먹으면 한국어를 잘하게 될 거라고 하셨습니다.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부산 지역에서 1년 정도, 그리고 서울에서 1년 반 정도 생활했습니다. 이곳 서울에서는 6개월 넘는 기간을 유락동에서 보냈습니다. 지금은 유락동이 없어지고 대신 신당5동이 되었습니다. 당시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바로 제가 만나는 사람들이 겸손하고 친절했다는 것입니다. 잘사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자신의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기꺼이 나눠줬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간 뒤 한 동안을 한국에 오지 못하다가 2005년에야 다시 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곳 한국에 잠시 들렀었는데 마치 완전히 새로운 나라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1962∼1965년 당시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어마어마한 발전에 입을 다물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한국이 경제 강국이 되어 있습니다.

 

지난 1년 반 동안, 저는 아내인 캘린 펙(Calene Peck)과 함께 중구 신당6동에 거주했습니다. 이곳에서 매우 편안하게 생활했습니다. 50여년 전에 그랬듯이, 여전히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사람들의 친절입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어디에서든 그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의 근면이 바로 한국을 발전시켰고 어마어마한 차이를 만들어냈습니다. 저는 신당동의 엘림 지역 아동 센터에서 어린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했는데, 얼마나 보람있었는지 모릅니다. 또 매달 신당동에서 열리는 세사(SESA) 영어 학습반 참석도 즐겨했습니다. 그곳에 가면 매우 훌륭한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2013년 3월 5일이면, 저와 아내는 다시 아이다호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 지역, 그리고 이 아름다운 나라에서 만났던 여러 좋은 친구들이 그리울 것입니다. 언젠가 다시 이 한국에 돌아올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저희의 이곳 생활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갖게 해주신 모든 중구민들께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