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수 년 전 이맘때 쯤 인 것 같다. 야근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지하철에 올라 귀가를 서두르는데 웬 노인이 전철 안에서 이렇게 외치기 시작했다. "미스코리아 유관순! Why two Korea, 미스터코리아 안중근! Why two Korea" 지하철 안을 오가며 구호를 외치던 노인은 나에게 다가와 면전에서 또 한 번 외쳤다. 순간 당황스러웠고 지하철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인(狂人)이구나 싶었다.
걸인과 같은 모습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가득한 종이를 온몸에 두르고 자기가 신봉하는 듯한 신앙을 외치면서 맨발로 다니는 모습은 정상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당시에는 지하철 안에서 소동이라도 날까 싶어 모르는 척하고 책을 보는 척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수 년이 흐른 어느 날, 지하철의 그 노인에 관한 동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 관한 인터넷 기사들을 찾아 읽으며 또 한번 당황스러워졌다.
그는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3개 국어를 할 줄 아는 수재에다 심지어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애쓴 독립운동가란 기사 내용과 이전에 지하철에서 보았던 광인(狂人)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큰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움막에서 기거할 것만 같은 노인은 가족과 함께 번듯한 주택에 살고 있고, 슬하의 자녀 5남매를 남부럽지 않게 길러낸 다복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추운 겨울에 자신은 맨발에 허름한 옷을 입을지언정, 가족들이 방한복을 마련해 주는 즉시 불우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고 마는 노인은 그야말로 성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그분이 일제 강점기 중국에서 광복군에 입대하여 활동한 독립유공자였다는 사실이다. 그런 분들을 예우하고 선양하는 국가기관에서 근무하는 사람으로서 그분에 관한 이야기는 더욱 더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자료를 찾다보니 그 분이 외친 "미스코리아 유관순! Why two Korea, 미스터코리아 안중근! Why two Korea"의 뜻은 "안중근 유관순 같은 분들이 참 한국인이며 그런 이들만 계신다면 왜 두 개의 한국이 있겠느냐"는 의미로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30년간 맨발로 다닌 이유도 "남북통일이 되기 전엔 절대로 신발을 신지 않겠다"라는 신념에서 나오는 일종의 퍼포먼스였다는 사실이 나를 더 놀라게 했다.
이미 작고하신 그 분, 애국지사 최춘선 선생님은 지금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져 있다. 기회가 되어 대전현충원에 가게 되었을 때, 그분의 묘소 앞에서 많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 맨발의 성자(聖者)처럼 광인(狂人)이라고 비웃는 사람들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조국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애국지사가 계셨다는 사실에 새삼 숙연해졌고 다시 한 번 애국지사들의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기억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돌아오는 8월 15일은 제67주년 광복절이다.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많은 순국선열과 애국지사가 자신을 희생했다. 역사 속에서 해방을 염원했던 선조들은 의병항쟁, 의열투쟁, 3·1독립운동, 독립군의 무장투쟁, 임시정부의 활동 등 갖가지 방법으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애쓰고 노력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국가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다. 아무쪼록 다가오는 광복절은 다시 한 번 조국 독립을 위해 살신성인하시고 돌아가시는 날까지 나라와 동포에 대한 그 큰 사랑 가득했던 선열과 지사님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기는 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