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고 / 조 병 서 수필가·시인

노인도 쓸데가 있다

생로병사에서 벗어날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노년의 세월은 누구나 거쳐야 하는 삶의 여정일 것이다.

 

하루 하루를 할일 없이 무료하게 보내야 하는 노인들의 절절함과 기구함을 대체 그 누가 그 속을 알아줄까.

 

연장자를 깍듯이 모시는 것은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의 오랜 전통이며 예법이다. 늙었다고 뒷전으로 밀려나야만 한다면 얼마나 비참하고 억울할까? 말 못하고 참고 견디어 내야만 하는 노인들의 심정을 그 누가 이해해 줄 것인가? 파란만장한 노인의 세월속의 노하우, 정말 쓸 곳이 없는 것인가?

 

사람들이 늙었다고 하는 것은 오래 살았다고 하는 것이며, 오래 살았음은 많은 경험과 노하우가 쌓였다는 것이다. 그 많은 경험과 축적된 삶의 부피가 만만치 않음을 의미할 것이다.

 

노인들의 높은 경륜과 지혜를 활용하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방치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라 아니할 수 없다. 노인들이 이 사회의 일원으로 제자리를 잡을 때 우리나라는 굳건한 바탕위에 바로 설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나이 먹고 늙었다고 방치하는 것은 또 하나의 직무유기다.

 

제자리를 못 찾고 우왕좌왕하며 하루하루 허기와 굶주림을 채우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원수 같은 시간마저 멈추어버린 듯하다.

 

하루하루 할일 없이 무엇으로 소일할까 궁리 끝에 1월에서 12월까지 마구 뒤섞여가며 획획 지나가는 그림 맞추기에 깊숙이 빠져 교통비마저 날려버리고 비척대며 몇 킬로미터나 걸어가 차디찬 쪽방에 새우잠 자고 아침에 눈을 뜨면 살아있음이며, 눈을 못 뜨면 열흘이건 한 달이건 누가 찾아와야 알려지는 썩어버린 세상, 그나마 취미라고 화투짝에 홀딱 팔려 화투짝과 영원히 동행하는 흙빛 노인들의 어둡고 허름한 세태를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

 

아마도 노인의 세월은 죽음의 바다에 둘러싸인 고독의 돌무더기 같지 않을까? 하루 한시라도 화투판을 벌이지 않으면 노년의 무료함과 쓸쓸함을 무엇으로 감당할까.

 

흐릿흐릿한 시야에 자꾸자꾸 어른거리는 죽음의 그림자 속에 손마디 앙상한 손가락으로 하루하루 패를 띠는 노인 심정을 누가 짐작이나 할까?

 

화투 패를 돌리는 노인들의 핏기가신 행색들, 그것도 그네들의 기다림의 예행연습이고 그 예행연습 뒤에는 죽음의 그림자뿐이다.

 

노인들의 꼬깃꼬깃 내놓은 비록 몇 푼 안되는 판돈이지만 그 돈이 노인들의 목숨이다. 무료함과 외로움에 지친 노인들의 황망한 생활상은 젊은 세대들이 알고 있을까. 멀지 않는 장래에 젊은 사람들의 차지인 것을 어찌 모른단 말인가.

 

의술이 발달과 좋은 음식으로 수명은 길어지는데 노인들은 할 일은 없는 것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젊은이들의 부모들은 외롭고 쓸쓸하다. 그리고 노인들은 슬프다. 그러나 노인도 한때는 이 나라를 부흥시킨 역군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늙었어도 노인도 우리나라 대한민국 국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