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시인이자 미술평론가인 허버트 리드(Herbert Read
1893~1968)는 예술교육자로서 더욱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현대사회의 병폐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안으로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예술교육이론을 제시해 교육적 효과를 입증했고, 예술이 기초가 되는 교육개혁을 주장했다.
인간의 무감각상태는 정신의 병에 해당 하며 그로 인해 도덕이 붕괴되고 범죄가 증가해 인격분열, 정신분열이 야기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같은 상태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예술을 통한 교육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지적능력과 정서와 신체를 고루 발달시키고 성숙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교육이라고 할 때, 예술은 사람만이 소유하고 향유하는 그 자체가 교육적 성격을 지니고 있고, 즐거움을 동반하는 체험의 장으로써 자아형성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도 그의 논리가 절실한 시대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의 놀라운 경제성장에 역비례하여 가지각색의 문제아가 발생하는 현상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어린이, 청소년의 경우, 유년시절 그림책이나 동화책 더 나아가 인형극 혹은 아동극을 보는 것을 시작으로 대부분 초등학교 3~4학년까지는 비교적 자유롭게 다양한 문화예술체험의 기회를 갖는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기 전 까지는 학습과 관련되지 않는 한 그 같은 기회를 갖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다. 따라서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 10년 정도를 문화예술의 암흑기를 맞이하고 있다. 때문에 성인이 되어도 문화가 무엇인지 예술을 어떻게 향유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또다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갖게 되는 과정을 대물림 하고 있다.
문화예술의 감수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축적을 필요로 한다. 이미 외국에서는 예술교육의 효과가 입증돼 예술적 감각을 가진 아이들이 학습과 지능 면에서 그렇지 않은 아이들 보다 우수하다는 것이 증명된 사례가 발표됐다.
선명한 담론 과정의 절차를 제대로 밟지는 못했을 지라도 아무튼 우리 역시 문화예술교육시대에 들어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체계도 없이 여기저기서 행해지는 교육자 위주의 프로그램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 특히 자녀를 둔 부모들이 매우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신뢰를 잃은 제도교육이 또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어 학무모의 허리를 휘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시선도 피할 수가 없다.
솔직히, 우리나라 입시제도 하에서 아무리 질 높은 문화예술교육을 시도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이다.
우리가 문화발전의 기회와 자존심을 빼앗긴 일제 식민지 시대를 벗어나 혼란과 전쟁과 가난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서구에서는 양차대전을 전후로 체계적인 문화예술교육이 개발, 정착, 발전하여 현재 60세 정도에 이르는 세대가 이미 문화예술교육의 피교육 세대에 해당하고 그들이 정책을 좌우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간단한 예를 들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전 세계 누구나 로열티를 물어가며 사용하고 있는 윈도우의 발명으로 세계 제일의 갑부가 된 빌 게이츠가 바로 이 세대에 해당한다고 하면 대충 문화예술교육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의 성과는 개인으로서는 자아발견을 통한 행복한 삶으로, 국가로서는 이상적 이미지구축과 경제의 요인으로 작용하는 웰빙 그 자체에 해당한다.
잘 먹고 잘 입고 잘사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하는 것이 화두인 시대에 유기농을 찾아다니듯 우리 아이들에게 유기농 문화예술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우리들의 의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