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봉화식은 고려 의종 3년때부터 조선 고종 32년까지 지속된 봉수는 평상시에는 언제나 한홰(횃불 또는 연기)만 올려서 태평무사함을 알렸다.
전국 각지의 경보사항을 최종 수합보고하는 중앙봉수소의 역할이 남산 봉수대에서 수행된 점을 착안, 통일 기원 봉화식을 개최하게 됐으며 한반도 화해와 협력시대에 통일 향한 온 겨레의 염원을 담은 봉화를 올려 민족의 통일의지와 화합을 다짐하는 계기로 마련하고 있다.
남산봉수대는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때부터 1895년 고종 32년 5월9일(양력 7월1일)까지 500여년간 존속됐었다.
남산봉수대는 동쪽에서 서쪽을 향하여 제1, 제2, 제3, 제4, 제5봉의 5개소가 있었으며 전국각지 총 686개소의 봉수망으로부터 전달되는 경보를 병조에 종합 보고하는 중앙봉수소의 역할을 담당했다.
평상시에는 평온함을 알리는 한홰를 올리지만 적이 출현할 경우 두홰, 적이 국경에 접근시 세홰, 국경 침범시 네홰, 접전시에는 다섯홰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