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가 지난 8일 중구여성회관에서 개최한 ‘신세대 주부들의 명절 증후군’이라는 주제의 좌담회에서 참석한 패널들이 진지하게 토크를 하고 있다.
◐ 토크 참가자
▲진행 이경일 중구여성단체연합회장
▲신세대 주부 둘째며느리 이혜란(38, 봉래초), 맏며느리 성영수(41, 신당초), 막내며느리 김계자(47, 덕수초), 둘째며느리 박수희(35)
▲베테랑 주부 김인숙 주부환경연합회장, 종갓집 장손 며느리 이승옥 중구한사랑협의회장 (이상 7명)
명절로 인해 몸살을 앓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다 같이 즐거워야 할 명절이 가정불화와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고, 일부이기는 하지만 명절 후에 이혼하는 가정이 급증한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번 추석 명절은 2일부터 4일까지로 기간이 짧아서 고향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탓인지 이 같은 보도는 별로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본지는 지난 8일 중구여성회관 강당에서 신세대 주부 대표와 베테랑 주부 대표들을 초청해 ‘신세대 주부들의 명절 증후군’이라는 주제로 토크 형식의 좌담회를 개최했다. 이 좌담회에서는 명절에 대해 신세대 주부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면서 선배 주부들이 생각하는 명절등에 대해 접할 수 있는 의미있는 장을 마련했다.
신세대 주부 “명절 차례상 점차 간소화 돼야”
베테랑 주부 “시대 변해도 전통문화ㆍ가풍은 중요”
본지가 지난 8일 중구여성회관에서 개최한 ‘신세대 주부들의 명절 증후군’이라는 주제의 토크 형식인 좌담회에 참석한 중구 대표 며느리들의 표정은 자못 진지했다. ‘명절 증후군’이라는 주제가 그리 가볍지 않을뿐더러 중구민을 대표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참석자들은 결혼 후 명절을 보내면서 느꼈던 자신들의 생각을 가감없이 표출하고, 또 다른 참석자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앞으로도 계속 겪을 수 있는 명절 스트레스에 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또 이들은 명절 때마다 대두되는 차례상과 제사 음식에 관한 스트레스에 대해 집중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맏며느리인 성영수씨는 오히려 제사를 지내지 않았으며, 오히려 막내며느리인 김계자씨는 직장인 윗동서를 둔 탓에 홀로 맏며느리 역할을 하면서 그동안 힘든 명절을 보내왔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또 요즘 변하고 있는 제사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과, 종교가 다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시댁과의 갈등에 관해서도 열띤 토론이 펼쳐졌다.
◈ 며느리와 차례상, 제사 음식 준비
진행자(이경일 회장)^우리 시댁은 제주도에 있는데 유교의식이 상대적으로 강해서 제사도 꼭 자정에 지내야 하는 등 옛 의식대로 하려는 경향이 있다. 다른 분들은 이번에 어떤 명절을 지냈나.
이혜란^시댁과 친정이 모두 전라도 순천이어서 순천에 다녀왔다. 시어머니께서 예전에는 명절 음식을 성대하게 차렸는데 점점 그 양이 줄고 있다.
다른 집들도 요즘은 옛날과 달리 굳이 명절이 아니어도 평소에 좋은 음식을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인지 간소화하려는 경향이 없지 않다.
명절을 앞두고 마트에 가보면 명절 음식이 전부 다 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명절 음식을 준비하면서 나하고 동서가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나누는 모습에 흐뭇해하시기도 한다. 실제로 음식을 같이 하면서 대화 속에서 서로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같아 의미있는 시간이 아닌가 생각한다.
김계자^시댁과 친정이 모두 경상도 포항인데, 어른들 다 돌아가시고 장손이 서울에 계셔서 고향에 못 내려가고 서울에서 제사를 지냈다.
나는 막내며느리이긴 하지만 윗동서가 더 어린데다 직장인이라서 결혼 직후부터 맏며느리 역할을 도맡아 했다.
시어머니도 2년간은 일을 주도해서 하시더니 그 후에는 애만 보시고 모든 것을 나한테 맡기시더라. 게다가 제사를 지낼 때면 제주들이 50명 정도 오시기 때문에 국도 많이 끓여야 하지만 부침도 혼자서 몇 광주리를 다 하기도 했다.
제사를 다 지내면 다 같이 오후에 산소도 가야 되니까 준비하는데 힘이 들었다. 그런데 시어머니, 어르신들이 돌아가신 지금은 장손들끼리 알아서 하겠다고 나서서 한결 편해졌다.
남편은 어렸을 때부터 장손의 맏며느리였던 시어머니가 하시던 일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명절 때 여자들끼리 장을 보고 일을 하는 것을 당연시여기는 경향이 있다.
박수희^시댁이 수원에 있지만 이번에는 사지 않았고, 종교가 기독교라서 특별히 차례는 지내지 않는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친정어머니께서 명절 때마다 고생하시는 모습을 봐왔기 때문인지 나중에 시어머니가 돼서 며느리를 보게 되면 고생하지 않게 간소화하고 싶은 생각이다.
이승옥^28대 종갓집인 우리 시댁은 1년에 제사를 9번 넘게 지낼 정도로 제사가 많았는데, 내가 시어머니가 된 지금은 아들과 며느리가 앞치마를 입고 일을 같이 할 수 있도록 주도를 하고 있고, 비슷한 제사는 통합해서 많이 줄였다.
◈ 명절과 제사 문화, 어떻게 변하고 있나
진행자(이경일)^요즘 10대들의 말을 들어보면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지 귀신이 어디 있느냐고 이야기 한다고 한다. 요즘 젊은 주부들의 생각은 어떤가.
성영수^명절 때 해외에 여행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제사를 아예 해외나 콘도에서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해외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직 한국 전통의식에 반하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우리처럼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에서는 명절 때 시부모님과 함께 다 같이 여행가서 쉬고 오는 것도 명절을 알차게 보내는 한 방법이 아닌가.
이혜란^10대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은 부모의 탓도 크다. 아이들은 가르치는 대로가 아닌 보이는 대로 따라하는 경향이 있다.
10년간 제사를 지내고 산소에 가는 것을 아이들과 같이 반복하다가 남편을 따라서 2년간 가족이 해외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명절 때가 되니까 어른들이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먼저 산소 가는 이야기를 꺼내더라.
김인숙^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있다고 해도 기본적인 전통 문화를 따라야 하는 이유가 반드시 있다. 명절 때 음식을 하면서 기름 냄새를 풍겨야 한다는 속설이 있는 것처럼 음식을 직접 준비하는 것은 가풍과 함께 상당한 의미가 있다.
◈ 명절 스트레스,어떻게 풀까
사회(이경일)^명절이 되면 이런 저런 이유로 스트레스가 쌓이기 마련인데, 모두 어떻게 스트레스를 풀고 있나.
김계자^시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는 1개월에 제사를 2번 지낸 적도 있었다. 그리고 음식을 준비할 때 도와주는 사람들도 없어 몸이 피곤하고 마음이 힘들었다.
그래서 명절이 지난 다음날에는 친구들을 만나서 수다떨고 오거나 혼자 영화관에 갔다 오는 방법으로 풀기도 한다. 남편도 이해하는 편이다. 사실 명절 때 성심성의껏 만든 음식들을 가족들이 맛있다면서 먹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이승옥^제사를 준비하면서 음식 장만을 할 때 마음에서 우러나와 정성껏 했기 때문에 맛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시댁에서 명절 때 음식장만 등 많은 고생을 하지만 친정에 가면 공주대접을 받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시댁에 시어머님 혼자 두고 오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 종교적인 갈등과 해소법
성영수^우리 친정의 종교는 천주교이고, 시댁은 개신교이기 때문에 그에 관한 갈등이 있었지만 슬기롭게 대처하고 있어 종교적인 스트레스는 많지 않다.
이혜란^나도 모태신앙으로 종교가 기독교인데 시댁은 유교였다. 시댁이 워낙 종교에 관해 엄격해서 처음에는 갈등이 있었지만, 결혼 후에 제사를 지내고 산소에도 가면서 더 잘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거꾸로 남편도 친정에 와서는 추도예배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시댁에서는 이런 것들을 다 알면서도 노력을 인정해주시고 모른 척 해주더라.
이경일^지금까지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는데 모두 제사 음식을 준비하면서 명절을 보낼 때 정성껏 하려는 마음을 아직은 갖고 있는 것 같다.
며느리로서 명절 때 겪어야 하는 스트레스를 말끔히 해소하기 위해서는 친지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선보여야겠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꼭 맏며느리만이 아니라 가족들이 다 같이 함께 음식 장만을 하며 적절히 분담을 해야 하고, 이제는 남자들도 앞치마를 두르고 동참해야 하는 때가 왔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