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루이 장 감독의 ‘붉은 강’의 한 장면.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키워드 아래, 어제의 고전영화를 바탕으로 전 세계의 최신작과 화제작들을 통해 오늘을 돌이켜보며 미래를 조망해 봤던 제3회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조직위원장 정동일, 집행위원장 이덕화)가 8월 24일~9월 1일까지 영화 상영과 축제 등 대장정을 마치고 성황리에 폐막됐다.
이번 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했던 점은 재능있는 젊은 영화인을 발굴하는 대학생영화제 씨네 스튜던트에서 참신한 기대작들이 발견됐으며, 시민들을 대상으로 남산공감, 별이 있는 필고라, 칩칩톡톡 등의 이벤트가 마련된 것이다. 개막식 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상과 폐막식 날 배우 장진영의 죽음으로 인해 안타까움과 슬픔 속에 행사를 진행해야 했던 어려움을 극복하고 무사히 끝마친 이번 영화제를 다시 한번 떠올리며 제3회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를 총결산했다.
#개막작 ‘뉴욕, 아이러브유’, 폐막작 ‘정승필 실종사건’
이번 영화제의 공식 개막작은 나탈리 포트먼의 감독 데뷔작이자 이반 아탈, 이와이 순지 등 여러 유명 감독들이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뉴욕, 아이러브유’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식 폐막작은 강석범 감독, 이범수·김민선 주연의 ‘정승필 실종사건’이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상영됐다.
지난해 토론토 영화제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돼 세계 영화 팬들의 주목을 받았던 ‘뉴욕, 아이러브유’는 이번 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국내 팬들의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켜 빠른 시간 내에 매진되기도 했다. 특히 7월 23일~8월 15일까지 홈페이지 ‘포토갤러리’에 자신이 사랑에 빠진 국내외 도시와 충무로에서 직접 찍은 사진을 올리면 출품작 심사를 통해 총 100명에게 개막작 티켓을 제공하는 이벤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이번 영화제에 대한 사람들의 높은 관심도를 엿볼 수 있었다.
#세계적 영화제… 그러나 차분한 행사 진행
영화제 하면 레드카펫인데,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분위기 속에 경건하고 차분하게 진행된 이번 영화제의 개막식. 당초 영화제 참가작의 해외 감독, 배우뿐 아니라 국내 유명 영화배우와 영화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소녀시대, 2PM, 쥬얼리, 이승철, 임형주 등 스타급 가수들의 축하공연이 어우러진 MBC TV특별 생방송으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전면 취소됐으며, 고인을 애도하고 평화를 상징하는 그린카펫으로 대체됐다.
그러나 많은 시민들은 도심 속에서 열리는 영화 축제의 시작을 환호했으며, 퇴근 후 집으로 발길을 돌리던 직장인들과 광화문 광장에 나들이를 왔던 시민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세종문화회관 앞에 모여들었다.
또한 세계적 영화인 다니엘 세르소 파리대학 교수, 넷팩의 창립자 아루나 바수데브, 싱가포르영화제 설립자이자 유명 영화평론가 필립 체, 프랑스 브졸 국제 아시아영화제 위원장 장-마크 테루안느, 미국 할리우드리포트의 부편집장 데비드 모건을 비롯해 ‘M’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이명세 감독 등 충무로 오퍼스 심사위원과 무간도 시리즈로 유명한 맥조휘, 장문강 감독, ‘첨밀밀’의 시나리오 작가로 유명한 ‘친밀’의 아이비 호 감독, ‘디아이’ ‘방콕 데인저러스’로 유명한 대니 팽 감독 등 아시아의 유명 영화 감독들이 대거 방한해 영화제의 위상을 높일 수 있었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전체 라인업이 공개됐을 때 영화제 홈페이지는 접속자들로 인해 속도가 느려질 정도로 관심도가 대단했다. ‘어제’에 해당하는 영화는 칸, 베를린, 베니스, 아카데미 등 역대 영화제 수상작들을 재조명하는 씨네클래식, 한국 영화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최초의 무비스타이자 마지막 로맨티스트인 배우 신성일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씨네 레트로1, 충무로의 황금기에 제작된 한국고전 도시액션 영화 회고전을 볼 수 있는 씨네 레트로2, 미국의 팝 아이콘 마릴린 먼로의 대표작들을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는 씨네 레트로3까지 총 4가지 섹션에 45편이 준비됐다.
‘오늘’에 해당하는 영화는 총9개의 섹션과 87편으로 구성됐으며 유럽이나 미주, 아시아에서 큰 주목을 받고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흥미진진한 작품을 소개하는 ‘올댓 씨네마’, 현재 세계 예술영화의 중심에 서 있는 시네아스트들과 2009년에 상영된 그들의 최고 걸작을 선별해 소개하는 씨네 도떼르, 홍콩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 감독들의 대표작을 통해 진정한 아시아 액션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씨네 아시아 액션, 세계 영화의 최전선을 보여주는 젊은 감각과 스타일로 무장한 뉴 웨이브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씨네 포럼이 마련됐다.
세계 영화계의 새로운 트렌드와 스타일을 보여주는 미래의 시네아스트를 발굴하는데 초점을 맞춘 ‘내일’ 부문에서 가장 주목됐던 부분은 당연히 경쟁부문인 ‘충무로 오퍼스’였으며, 대학생 단편영화 공모전을 통해 재능있는 젊은 영화인을 발굴하는 씨네 스튜던트, 어린이와 가족, 어른들이 재밌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만날 수 있는 섹션도 준비됐다.
#관객들의 기대와 관심 속에 나온 수상작들
개막식에서 원로배우 신영균씨가 공로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충무로 오퍼스, 씨네 스튜던트 등 이번 영화제에서도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 속에 여러 작품과 감독, 배우들이 수상을 했다.
프랑스 파리1대학 팡테옹 대학교수 다니엘 세르소, 빌바오 영화제와 비트리쉬르센느 비엔날레 등에서 선정된 작품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이탈리아 파스칼 토네구조 감독, 도화선·사랑의 연대기·기동부대 등 홍콩 액션영화 각본의 최고봉으로 여겨지는 작가 제토 캄 유엔, 한국의 이명세 감독 등을 포함해 총 9명의 세계적인 영화계 인사가 심사한 충무로오퍼스의 최우수 작품상은 지아루이 장 감독의 ‘붉은 강’에 돌아갔다. 붉은 강을 관람한 관객들은 감독의 세밀한 연출과 묘사에 감동을 받았다는 평이 많았으며 감독과의 대화에서도 감독의 차기작에 관한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최우수 감독상에는 안드레스 와이스블루스의 ‘행복해지는 199개의 방법’, 남우주연상은 ‘체외수정’의 자카리 바카로프, 여우주연상은 ‘친밀’의 임가흔, 최우수 액션영화상은 맥조휘·장문강 감독의 ‘절청풍운’이 선정됐으며, 심사위원특별언급으로는 김삼력 감독의 ‘하얀나비’가 선정됐다. 충무로오퍼스 수상자에게는 상금과 크리스털라이즈드-스와로브스키 엘리먼츠에서 특별제작한 트로피가 수여됐다.
영화제 속의 영화제로 지난달 27일 개막했던 대학생단편영화제 ‘씨네 스튜던트’가 지난달 30일 막을 내리면서 최종 5개의 작품을 우수작품상으로 선정했다. 수상작은 이승희 감독의 ‘아, 맨’, 임영빈 감독의 ‘진실게임’, 이영우 감독의 ‘싸구려 커피’, 안승혁 감독의 ‘비보호 좌회전’, 안평욱 감독의 ‘하늘아래’로 무순위 선정됐다. ‘씨네 스튜던트’의 심사위원은 영화감독 이정국, 김국형, 오기환, 대진대 교수 한우정 등이 맡았으며, 수상 감독들에게는 상금 100만원과 부상으로 도시바 노트북이 수여됐다.
#마릴린 먼로와 신성일 회고전
메인섹션의 세부 프로그램으로 영화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세기의 연인 마릴린 먼로의 팜므파탈과 한국 영화의 대표적인 청춘 아이콘 신성일의 옴므파탈적 면모를 만날 수 있었던 회고전이 열리기도 했다. 마릴린 먼로의 작품인 ‘나이아가라’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 ‘쇼처럼 즐거운 인생은 없다’ ‘7년만의 외출’ ‘뜨거운 것이 좋아’ 등의 작품을 감상한 젊은 층의 관객들은 옛날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마릴린 먼로의 매력과 작품성에 감탄했다고 평하기도 했다.
최고의 무비스타이자 마지막 로맨티스트 ‘신성일 회고전 포럼’에서는 한국영화에 있어 신성일이라는 배우가 갖는 역사적인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자리였다.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와 공동으로 주최하고 유지나 교수가 사회를 맡은 포럼은 김종완, 신강호, 곽영진, 김두호, 조관희, 송낙원 등 당대 유명 영화평론가들과 관객들이 즐겁고 자유롭게 영화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였다. 전성기였던 6,70년대의 한국 영화는 신성일이 나오는 영화와 나오지 않는 영화로 구분될 정도였다는 말처럼, 신성일이 출연한 ‘안개’ ‘초우’ ‘레테의 연가’ ‘장군의 수염’ ‘겨울여자’ ‘위험한 청춘’ ‘태양닮은 소녀’ 등의 영화를 통해 당시 배우 신성일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칩스타운, 남산공감, 칩칩톡톡
중구민들, 그리고 영화제를 위해 찾아온 타 구민과 외국인 관광객들은 이번 영화제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충무로 일대에서 칩스타운, 남산공감, 칩칩톡톡이 사람들의 마음을 기대와 희망으로 부풀어놓은 뒤 놀랄만한 멋진 공연으로 사람들에게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풍성하게 선사했기 때문이다.
도심 속에서 즐기는 영화 문화제를 표방하며 진행된 이번 영화제는 매일경제신문사에서 명보아트홀을 잇는 거리를 메인 거리 ‘칩스타운’으로 지정해 영화 포스터와 다양한 사진, 4미터 높이의 초대형 로보트태권브이를 전시하는 등 콘서트를 포함한 다양한 이벤트를 선보였다.
또한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무료행사를 마련키도 했다. 남산 한옥마을에서 수준 높은 문화공연 ‘남산공감’, 서울시청 광장에서 영화상영회인 ‘별이 있는 필고라’, 명동 한복판 야외 무대에서 영화제에 참석한 유명 감독 및 배우를 만나는 프리스타일 토크쇼 ‘칩칩톡톡’ 등 늦여름 밤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이벤트가 펼쳐졌다.
#해외 게스트들의 충무로 방문
영화 속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배우들과의 만남도 있었다. 물론 개막식 행사가 예정에 비해 대폭 축소된 이유로 배우들이 레드카펫을 밟는 화려한 모습은 볼 수 없었으나 관객과의 대화 등에서 출연진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기도 했다. ‘절청풍운’의 맥조휘·장문강, ‘친밀’의 정이건·임가흔, ‘재생호’의 위가휘ㆍ유청운 등이 참석해 관객들을 환희와 감동의 도가니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