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사람 / 서 소 문 만리성 이진강씨

“황금항아리로 사랑 나눔 실천”

서소문 고가차도 인근의 중국음식점 ‘만리성’은 홍합과 어울린 얼큰한 ‘홍합짬뽕’으로 유명하다. 점심시간은 물론 저녁시간에도 줄을 서서 홍합짬뽕을 먹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그런데 이 집에는 명물이 또 하나 있다. 카운터 한켠에 있는 황금색 항아리다. 이 항아리 안에는 놀랍게도 외화가 수북이 쌓여있다.

 

 “우리 집을 찾은 외국 관광객들이 홍합짬뽕에 반했다며 기념으로 준 팁을 모아둔 거에요.”

 만리성 주인이자 주방장인 이진강(47)씨는 황금색 항아리를 안으며 환하게 웃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얼큰한 홍합짬뽕을 먹는 손님들의 모습도 신기하지만 음식맛에 반했다며 팁을 주는 그들의 마음 씀씀이도 신기하다. 그래서 이 항아리 안에는 많은 외국 관광객들의 고마움이 새겨진 달러와 파운드, 엔화, 바트 등 세계 각국의 다양한 지폐와 동전이 담겨 있다.

 

 지난 해 12월에는 홍합짬뽕 집을 하면서 17년동안 모은 외화를 구세군에 기부했다. 하지만 워낙 다양한 세계 각국의 돈이 모여 있다 보니 은행에서 환전을 포기해 구세군은 유니세프에 그 돈을 다시 보냈다고 한다.

 

 화교인 아버지와 한국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씨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고등학교 졸업때까지 중국집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조달했다고 한다.

 

 알바를 하다보니까 공부는 아무래도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밴드부 활동까지 하면서 항상 꼴찌를 맴돌면서 담임선생님한테 혼도 많이 났다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후 알바하면서 배운 기술을 활용해 음식점에 취업했다가 80년대 중반 창동에 중국집을 차렸다. 같은 화교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짝꿍이던 아내 장덕주(47세)씨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했다.

 

 그 후 미국대사관 뒤편으로 가게를 옮겼다. 처음에는 남들처럼 모든 중국 음식을 팔았지만 해물이 듬뿍 들어가는 삼선짬뽕만 찾는 것을 보고 홍합의 비중을 늘려 지금의 홍합짬뽕을 개발했다고 한다.

 

 새로운 메뉴였지만 먹어본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각종 블로그에 소개되면서 손님들이 몰려 왔다. 재개발로 인해 2003년 5월 지금의 서소문 자리로 이사 왔지만 손님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은 늘 허전했다. 가난하게 살 때 보다는 많이 풍족해 졌지만 돈만 버는게 모든게 아닌 듯 싶었다. 하지만 어려운 이웃을 돕는 중구 행복더하기를 알게 되면서 무턱대고 소공동주민센터를 찾아가 박종성 동장에게 매달렸다.

 

 “동장님,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어떻게 하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지 가르쳐 주세요.”

 

 이렇게 행복더하기와 인연을 맺고 박 동장의 조언에 따라 차상위계층을 정기후원 했다. 그리고 10명에게 하루100원씩 월 3천원의 소액 기부도 했다. 설과 추석, 연말연시에는 저소득층 주민들이 따뜻한 명절과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매번 성금도 냈다.

 

 화교들이 지역사회 활동은 잘하지 못해 지금까지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지만 너무 신났다. 화교라고 해도 소공동 주민들이 그들을 따뜻이 보다듬었다. 고마움을 느낀 그는 동네 일이라면 솔선수범하면서 뛰어다녔다.

 

 그 결과 이씨는 올해부터 소공동 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부인인 전씨 또한 바르게살기는 물론 행복더하기 위원회와 효실천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나누는 기쁨을 알자 일하는 즐거움도 생겼지만 놀랍게도 손님이 배로 늘어났다. 특히 공중파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손님이 떼로 몰려왔다. 주방에서 일하는 그는 손님들을 위해 더욱 더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들었다. 재료를 아끼지 않고, 음식에 듬뿍 넣었다. 하루 묵히기 보다는 즉석에서 요리해 손님들에게 제공했다. 인공조미료 대신 홍합을 갈아서 육수로 만들었다.

 

 “체인점을 하자는 제안도 많이 왔지만 다 거절했습니다. 지금 이 상태 만으로도 행복하거든요.”

 봉사를 하면서 매년 나가던 부부 해외여행도 끊고 전부 봉사하는데 투자했다.

 

 그는 모교인 한성화교학교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중ㆍ고등학교에 매년 100만원씩 책은 물론 체육복과 운동기구도 기증했다. 작년에는 고등학교에 15만원 상당의 시계 35개를 기증해 감사패를 받는 등 꼴찌만 하던 학생이 성공해 화교 사회에 큰 화제가 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