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자원봉사 동아리 회원 35명과 함께 연탄을 배달하고 있는 김진근 회장.
중구 신당1동 보일러 설비업체 ‘동양설비’의 김진근 회장은 올 겨울 유난히 바쁘다. 혹한에 얼어터진 혼자 사는 노인들의 보일러를 무료 수리 해주러 다니느라 본업이 지장 받을 정도다.
매서운 한파가 닥친 지난 6일 새벽 1시에는 보일러가 고장나 추워죽겠다는 한 할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오토바이에 장비를 챙겨 싣고 달려간 적도 있었다. 할아버지네 보일러가 실외에 있어 언 손을 녹여가며 일하느라 수리는 아침 6시가 돼서야 끝났다고.
“돈, 돈 하며 살아봐야 얼마나 더 벌겠어요. 남들보다 하루 늦게 태어난 셈 치지요.” 라고 말하는 김 회장의 보일러 자원봉사는 지난 96년 처음 시작됐다. 독거노인들의 거처를 돌봐주던 중구청 자원봉사대가 보일러 기술자를 물색하다 당시 한국 열관리사 시공협회 중구지회 총무였던 김 회장과 인연을 맺은 것.
지금은 전국보일러시설협회 종로중구지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2년여 자원봉사를 하다가 98년부터는 아예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가스보일러, 파이프, 물주머니 등 부품을 구입할 때도 여분을 둬 더 구입하고, 자기 휴대폰 번호를 독거노인들에게 돌려, 지금까지 고치거나 새로 해준 설비가 모두 530여건.
“언젠가는 한 할아버지가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나도 보일러 좀 해줘!’하고 소리를 지르시더라고요. 솔직히 조금 떨떠름한 기분으로 현장에 갔더니 하반신이 없는 노인이 2평도 안되는 단칸 냉방에 혼자 살고 계시더군요. 그 모습을 보니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11세 때 전북 부안군 줄포에서 혼자 상경한 김 회장은 젊은 시절 국수집 배달, 공사장 막일 등 안 해 본 일이 없었다고. 지금도 아내와 자녀들에게 호의호식 시켜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부자라는 게 그의 자랑이다. 아들은 명문대를 나와 국내 최고 포털업체에서 일하고 있고, 4년 내내 장학금을 받고 대학을 다닌 딸은 석사 취득 후 문화재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
이런 김 회장이 요즘 투잡을 하고 있다. 바로 한양중학교 자원봉사 동아리 회원들의 후원자가 된 것. 아들의 중학교 담임이었던 이해종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지난해부터 동아리 회원 63명의 자원봉사 후원 역할을 맡고 있다.
틈나는 대로 자원봉사를 나간 그는 아이들을 데리고 지난해부터 한 부모 가정이나 홀로 어르신 등 어렵게 사는 가정에 연탄 배달 자원봉사를 했다.
지난해는 자원봉사 동아리 회원 25명과 5가구에 200장씩 연탄을 전달한데 이어 올해도 지난20일 자원봉사 동아리 회원 35명과 함께 5가구에 연탄 1천장을 배달했다. 45만원 상당의 연탄 1천장 값은 모두 김 회장이 부담했다.
김 회장은 “처음에 힘들어하던 아이들이 연탄 배달이 끝난 후에는 땀방울을 흘리며 함박 웃음을 짓더라”며 “이렇게 조금씩 나누면서 사니 마음도 편하고 일도 더 잘 풀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