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서의 중구의 위상 / 김 일 림 상명대 교수

중구 토박이회(회장 김성완)는 지난 25일 구민회관 소강당에서 제4회 중구 전통문화 발굴 보전 사업을 위한 강연회를 개최했다. 이날 강의를 맡은 상명대 김일림 교수는 서울의 심장부인 중구의 위상을 소개했다.

 

중구, 서울의 실질적 중심

수도서울의 관문, 교통요충지

 

 ◈행정중심지 중구

 

 1943년 6월10일 구제가 실시됨에 따라 경성부에 중구 종로구 동대문구 성동구 서대문구 용산구 영등포구등 7개 구가 설치됐으며, 이때 중구를 서울의 가장 중심부에 있는 으뜸가는 구로 의미를 칭하게 됐다.

 

 2006년 현재 중구는 행정동이 15개로 인구는 13만6천585명, 세대는 5천44세대로 총면적은 9.97㎢로 서울 25개 구 중에 가장 면적이 작지만 실질적인 도시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지역이다.

 

 서울의 25개구 가운데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중구는 청계천을 경계로 서울분지의 남쪽 반을 차지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청계천과 종로구, 남쪽으로는 남산의 정상과 응봉의 분수령을 따라서 용산구와 접해 있다. 동쪽은 신설동로타리에서 매봉산과 응봉을 잇는 난계로를 경계로 성동구와 이웃하고 서쪽으로는 만리동 중림동과 서대문 로터리를 경계로 서대문구에 경계를 하고 있다.

 

 태조5년에 백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등 4개의 산을 중심으로 도성을 건립, 남산을 중심으로 도성길이의 45% 이상이 중구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또한 태조7년에 완공된 숭례문은 도성의 안과 밖, 그리고 도성 안을 흐르는 청계천 수계와 용산 방향으로 흐르는 만초천(샛강) 수계를 나누는 언덕 위에 건립됐으며, 국보 제1호로 보존되고 있다.

 

 중구지역에는 4대문의 하나인 숭례문과 광희문 남소문 소덕문 등의 소문이 완성, 숭례문은 도성 8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으로 재적 가치에 의한 것 이외에도 수도의 위치상으로 경복궁의 앞쪽이 되는 남쪽에 있어 수도의 관문일 뿐만 아니라 교통 상으로도 가장 중요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지리학적 위상

 

 태조 이성계가 한양천도를 할 때 내사산으로 북악산(북) 낙타산(동) 인왕산(서) 목멱산(남)으로 성곽을 둘러싸고 있는 산으로 보았으며, 조선시대 때 남산은 수도의 남쪽의 안산이라는 평안함을 주는 산으로, 현재는 서울의 절대적인 의미에서 서울의 중심을 의미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5곳에 설치된 봉수대 가운데 나라의 모든 중대사는 남산을 통해 알게 되는 정보의 중심지였으며 현재는 서울타워가 들어서 있어 서울을 한눈에 들여다 볼 수 있는 수평, 수직적인 면에서 중요한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중구는 상대적이고 민족적인 의미에서 성스러운 장소이며, 풍수 지리적으로도 상징적인 중심을 의미한다.

 

 남산의 산정부에서 서울역으로 이어지는 지역을 빼고는 중구의 전역은 화강암으로 구성돼 있으며 남산부터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경사도 5도 미만의 평탄한 지역으로 중구의 대부분의 시가지가 발달돼 터전이 됐다.

 

 이러한 평탄한 지형은 기반암이 침식된 침식평탄면으로 건설에 안전한 기반이 될 뿐 아니라 홍수나 산사태 등과 같은 자연재해를 방지하는 구실도 한다. 중구는 인근 구에 비해 고도가 높으며 평지의 비율도 작아서 홍수 범람등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이다.

 

 지형적여건뿐만 아니라 도성 안에 위치한 입지 성격 때문에 1차 산업인 농경은 거의 불가능했으며 상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활동이 이루어 졌다.

 

 ◈경제 문화등의 중심지

 

 한반도 경제침략 3대 본거지인 조선은행 조선식산은행 동양척식회사가 남대문로와 을지로에 위치했다는 것은 이 곳을 중심으로 서울의 금융지구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한제국시대부터 상업지역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중구는 조선말 개항장의 설정과 함께 1882년 서울에 시장이 형성, 상업활동이 진전됨에 따라 금융기관이 설치돼 업무지역을 형성함으로써 도심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광복 후 서울로 인구집중이 가속화 됐으며, 1960년 이후에는 산업형 도시구조로 바뀌면서 새로운 상업시설과 각종 업무기관이 입지하게 됐고 중구지역으로 사회 문화 산업 금융 언론등의 각종 기관과 시장 백화점 호텔 오락시설등이 집중됐다.

 

 최근에는 남대문 북창동 명동이 관광특구로 지정, 국제적인 명소로 주간활동인구가 500여만명에 이르는 중추적인 지역의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전국 인쇄물의 70%를 담당하고 있는 인쇄업체와 언론 및 출판사도 집중돼 있으며, 과거 문인과 예술인들의 터전이었던 명동에는 대형패션전문점이 확산돼 단일브랜드 판매에서 벗어나 다양한 브랜드를 갖추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필요한 물품을 구입할 수 있는 원스톱쇼핑(One-Stop)이 특징이다.

 

 한편, 필동에 위치한 한국한옥마을 내에는 1994년 11월29일 서울 1천년 타임캡슐을 매설하며 당시 사람들의 생활풍습과 관련된 문물 600점을 수장, 400년 후인 2394년에 개봉해 서울의 모습을 후손에게 재조명코자 한다. 즉, 중구는 서울의 상징이자 한국의 상징이며, 미래 행복의 열쇠가 있는 장소임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