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 별 기 고 /  이 문 식  중구실향민협의회장

푸른남산, 소나무를 심으며

남산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남산은 우리 나라 애국의 상징이요, 작게는 서울시민의 상징입니다. 해방 후에도 저 남산은 아름드리 소나무로 울창했습니다. 그러나 6·25때 그 울창하던 소나무들이 모두 벌목이 되고 잡목과 아카시아 나무만 무성한 것이 현실입니다.

 

 서울 시민의 상징이기도 한 이 산이 잡목으로 황폐해 가는데 누구하나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며, 소나무 심기를 실천하는 사람을 볼 수가 없으니 중구를 제2의 고향으로 살고있는 나로서는 가슴아프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저는 일제말기, 8·15해방, 6·25전쟁, 4·19혁명, 5·16사건 등 격동기 속에서 우리 나라의 근대사를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때그때마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국민으로 살려고 애써왔습니다. 해방 후 6·25때는 당당한 대한민국의 국군으로 공산남침을 막아냈고 상이군인으로 8차 제대했습니다.

 

 서울에 돌아와 보니 당시 기성세대의 전쟁으로 생겨난 전쟁고아가 군을 이루고 있기에 이를 보살피는 대한소년훈육소라는 고아원을 동지들과 세우고 그 고아들의 양육과 교육을 실천했으며 또한 재향군인회 중구연합회를 운영하면서 후방의 전쟁 분담과 복구사업에 소임을 다했습니다.

 

 4·19혁명 때는 30세 나이로 서울시 의회의원으로서, 86,88올림픽 때는 대한 요식업중앙회 부회장과 한국유흥업 초대 중앙회장으로 올림픽 추진 중앙상무위원으로 세계만방에 대한민국의 국위를 선양하는데 심혈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77년의 적지 않은 나의 삶을 되돌아보면 열심히는 살았으나 크게 남은 것이 없다는 서글픔을 느끼며 남산을, 나의 제2의 고향을 푸르게 가꾸는데 남은 나의 삶을 바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 사업을 보다 구체화하며 배운 것은 소나무는 다른 나무와는 달리 나무도 비싸고 또한 이식에도 많은 비용과 어려움이 드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소나무에도 여러 가지 품종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나라가 해방 후 지금까지 4월이면 식목을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많이 심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면 수종선정을 제대로 못한채 그저 심기만 하면 울창하게 되는 줄만 알았던 것 같습니다. 식목에는 그 뜻과 실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그 지역에 맞는 기후와 적합한 수종 선택이 중요합니다. 우리 나라도 그 지역과 기후에 잘 맞는 수종선택이 되었더라면 지금쯤은 아름드리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남산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남산을 가보면 소나무도 여러 가지 종류를 심어 놓았고 남산 북쪽에는 일제 때 심어놓은 '아카시아' 나무가 대부분입니다. 차라리 지금부터라도 남산을 품종이 좋지 않은 나무나 잡목을 다 벌목하고 저 백두산이나 강원도 소금강산에 있는 홍송의 묘목을 5,6년생으로 개량해서 심으면 앞으로 10년 후에는 울창한 남산의 모습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지금같이 1주에 몇 십 만원이나 되는 소나무를 심기보다는 향후 10년을 목표해서 품종 좋은 그리고 저렴한 홍송 묘목을 심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저는 시작이 반이라는 생각으로 우선 소나무 100그루를 심기로 했습니다. 이 뜻을 전하고 협력을 구했더니 서울시에서 후원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이제 소나무 100주의 식목과 사후관리비 80%의 기금이 마련되었고 2005년 4월15일∼20일 사이에 식목을 완료하고 사후 2년의 육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남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상징이자 서울의 상징입니다. 소나무가 울창한 남산의 모습은 단순한 자연보호와 녹지조성의 의미를 넘어서 민족의 정서적 풍요로움을 상징한다고 저는 감히 주장하고 싶습니다. 10년 후의 푸른솔이 울창한 남산을 그리며 오늘도 설레는 꿈을 심으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