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산을 다녀와서 / 최 병 환 중구의회 행정보건위원장

"천태만상 자연의 신비에 감탄"

 

◇지난 6월 25일부터 27일까지 금강산을 다녀온 중구의회 최병환 행정보건위원장이 만물상에서 기념촬영을 한 모습.

 

닭알바위ㆍ구렁이 바위 인상적

비무장지대 통과 만감교차도

 

 ◈2004년6월25일(금)

 서울 광화문에서 오전 8시30분 출발, 강원도 고성 금강산 콘도에 7시간만에 도착했다.

 

 오늘은 동국대 북한학과 진회관 교수의 인솔로 동문 20명과 함께 한반도의 명산 금강산을 육로로 이용해 연구 답사하기 위해 방북하는 날로 아침부터 가슴이 설레였다.

 

 고성 금강산 콘도에 도착, 1차 수속을 마치고 통일 전망대로 이동해 남해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1시간 가량 입북 수속을 마친 뒤 남북을 왕래하는 버스에 몸을 싣고 분단 반세기의 철책선을 바라보며 비무장지대(DMZ)를 통해 북으로 약 10분 가량 비포장 도로를 지난 뒤에는 말끔히 포장된 아스팔트길이었다.

 

 남과 북 4㎞의 비무장지대 특히 군사분계선을 넘을 때 북한군이 검문을 했다. 아직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군사분계선 남쪽은 현대건설에서, 군사분계선 북쪽은 북한의 군인들이 담당하고 있음을 목격했다.

 

 좌우로 펼쳐진 논밭은 묵은 논이 눈에 띄었고 냇가에 매어놓은 소의 풀 뜯는 모습은 풍요로웠다. 약 1시간 가량 달린 뒤 장전항에 도착, 북한 입국 수속을 마치고 해금강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 온정각에서 온천욕을 하고 첫날을 보냈다.

 

 ◈2004년6월26일(토)

 오늘은 산행을 하는 날이라 일행은 장전항을 떠나 온정각을 경유해 해발 880m의 상팔담(8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다고 함)을 완등하고 내려와 구룡연폭포를 경유해 하산하는 코스였다. 산을 오르는 계곡은 소나무 숲의 휴양림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소나무가 흑 나비 병충 때문에 죽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경제적 어려움으로 방역을 못한 듯 했다.

 

 산행길에 접해있는 유명한 사찰 신계사 터와 사리탑을 볼 수 있었는데 남한과 북한의 불교 인사가 합의하여 남한에서 비용을 부담해 신계사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날씨는 비교적 괜찮아서 상팔담과 구룡폭포를 볼 수 있었으며 하산길에 닭알 바위와 구렁이 바위도 볼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

 

 중식 후 일행은 옛날 왕이 여행을 하다가 주변 경관에 심취되어 하루를 머물려다 사흘을 머물었다 하여 삼일포라 불리게 됐다는 곳으로 갔다. 이 곳은 원래 바다였으나 풍화작용으로 사구가 형성돼 막히는 바람에 거대한 호수로 변한 곳으로서 경관이 수려한 곳이었다.

 

 삼일포를 둘러본 일행은 북한에서 자랑스럽게 여기는 세계적 예술단인 교예공연을 감동적으로 관람했다. 온정각에서 온천욕과 석식을 마치고 장전항에 위치한 해금강 호텔로 이동했다. 약20분 정도의 거리지만 해금강 호텔 근거리에 가족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숙박시설이 돼 있었고 컨테이너 박스로 꾸며진 금강빌리지에는 관광객과 상주 직원들이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늦은 밤 고성항에서 직접 잡았다는 활어회집에서 일행과의 한잔의 술은 낭만적이었다.

 

 ◈2004년6월27일(일)

 오늘은 귀국하는 날로 오전 6시경 기상해 보니 날씨는 맑았다. 창문을 열면서 방이 바닷가였으면 일출이라도 볼 수 있을 텐데 하면서 창밖의 하늘을 바라봤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하늘에는 흰구름이 가려 보름달같이 보이는 태양이 떠 있는게 아닌가. 나는 이럴 수가 있는가 하고 놀랐지만 방향감각을 잃은데서 온 문제였음을 알게 됐다. 정전항은 지형상 일부러 만들기도 어려울 만큼 천혜의 안전한 항구로서 해금상 호텔의 위치가 동쪽 사구에 해당하는 곳이었으므로 산만을 생각할 때 아마도 착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일행은 온정각을 경유해 온천장옆 초대소(교예단이 머문다고 함)를 지나 108구비 만냥골을 따라 약 70여구비를 버스를 이용해 올라갔다. 해발 936m의 천선대를 등반하는 만물상 코스로서 참으로 경사가 심했다. 깍아지는 듯한 산을 오르면서 천태만상의 자연의 신비를 느꼈으며 천선대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주변 경관은 예술이었다.

 

 하산을 하면서 해발 900m 위치에 있는 죽장망이라는 약수터에서 세모금의 약수로 갈증을 해소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북한 여성 안내원이 사자바위 코끼리 바위 젖꼭지 바위 토끼바위등 정말 흡사하게 생긴 바위들은 각자가 최고인양 뽐내고 있는 모습은 정말이지 천하일품임을 설명했다. 일행은 무사히 하산해 통관수속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다. 버스에서 바라본 북녘땅은 평온하기만 했다.

 

 주민들은 주민도로를 통해 걸어가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등 비교적 먼발치서 종종 볼 수 있었으며 특히 아이들이 냇가에서 멱을 감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산들은 벌거숭이 민둥산이었다.

 

 일행은 비무장지대 군사 분계선을 통과하기 전에 북한군(남한으로 보면 헌병 같음)의 검문을 받고 역사적인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을 무사히 넘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영토에 도착했다. 대한민국의 울창한 숲을 보는 순간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가슴이 확 트이는 감동을 느꼈다. 또한 우리 나라가 바로 지상의 낙원이라 느꼈다.

 

일행은 통일전망대에 위치한 남한의 출입사무소에서 수속을 마치고 3일간의 정들었던 버스에서 내려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때의 시간은 오후 4시경이었다. 일행은 북녘하늘을 바라보면서 서울로 향했다.

 

 서울로 향하는 버스안에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1972년7월4일 공동성명발표, 1972년9월12일 남북적십자 회담, 2000년6월15일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6.15남북공동선언 42주년인 2003년 1만5천280명(금강산 관광객 제외)으로 많은 분들이 북한을 왕래하고 있구나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