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고 / 누더기 친일규명법 제정의 의미

김 삼 웅 성균관대학교수, 전대한매일 주필

국회는 지난달 3월2일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을 우여곡절 끝에 통과시켰다. 1949년 '반민특위'가 무산된지 55년만에 친일반민족행위를 정부의 공식기관에서 규명하고 역사적 단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법사위원회의 심의 과정에서 법안의 본질이 크게 훼손되는 등 '누더기'가 되고 말았지만 '원상회복'을 위한 법개정을 전제로 한다면 역사적인 일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묘청ㆍ정지상 등 개혁세력의 정치적 좌절과 김부식 수구세력의 득세를 '조선 1천년래 제1대사건'이라 규정했다.

 

 해방후 지금까지 59년 동안 정신사적 측면에서 건국사의 '제1대사건'이라면 당연히 친일민족반역자들을 척결하는 '반민특위'의 해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제헌국회는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에 협력하면서 악질적으로 반민족행위를 한 반역자들을 조사ㆍ처벌하기 위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구성하고 민족반역자들을 속속 구속해 재판에 회부했다.

 

 이때 반민특위가 제대로 활동해 반역자들을 처벌하고 매국의 댓가로 모은 재산을 환수 했다면 우리 현대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랬다면 친일파들이 정치ㆍ경제ㆍ문화ㆍ대학ㆍ언론ㆍ군부ㆍ경찰ㆍ여성ㆍ사법ㆍ문학 부문에서 주류가 되지 못하고 일본군 출신 박정희의 쿠데타와 그 아류인 전두환ㆍ노태우의 쿠데타는 물론 이완용ㆍ송병준 자손들의 재산찾기 따위는 감히 꿈도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6ㆍ25 전후 100만 민간인 학살과 4ㆍ19, 5ㆍ18의 시민학생 학살극도 자행되지 않았을 것이고 독재자들의 수천억 축재와 정치인들의 차떼기 불법선거자금 같은 것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현대사에서 만악의 근원이 친일반역자들을 처벌하지 않는데서 시작되고 만병이 여기서 진행된다. 어찌 '해방후 제1대사건'이라 하지 않겠는가.

 

 1949년 6월6일 미명, 내무부 차관 장경근ㆍ치안국장 이호ㆍ서울시경 국장 김태선 등이 주도하고 중부경찰서장 윤기병의 지휘하에 무장한 50여 명의 정사복 경찰이 반민특위를 습격했다. 이들은 반민특위 대원들을 무차별 폭행하고 반민특위의 서류와 집기를 탈취해갔다. 이날 이승만은 외신기자 회견에서 자신이 명령한 것이라고 후안무치한 발언을 했다.

 

 '6ㆍ6폭거'로 반민특위는 처절하게 해체되고 친일민족반역자들이 현대사의 주역이 됐다. 독립운동의 정통세력은 소외되고 민족을 반역한 변통세력이 주류가 되는 역사의 모순이 반세기 동안 진행됐다. 이런 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해방된 민족국가에서는 남부베트남과 대한민국 외에는 달리 없었다.

 

 지난해 8월 국회에서는 진상이라도 밝혀두자는 의도에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안이 155명의 서명으로 제안됐다. 그러나 법사위심의과정에서 조사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고 조사대상을 일본군 장교로 규정한 것을 '중좌(중령)'이상으로 수정했다. 역사왜곡의 원조 조선사편수회에 대한 규정을 삭제하고 언론ㆍ예술ㆍ종교ㆍ문학 등 문화기관이나 단체를 통해 일본제국주의의 통치를 찬양한 친일행위도 제외시켰다.

 

 조선총독부 고등계형사 등 경찰관리와 헌병 또는 헌병보조원을 삭제한데 이어, 사법부내의 판사ㆍ검사ㆍ서기ㆍ집달리ㆍ형무관리를 삭제하고 사법부내의 판사 또는 검사로 한정했다.

 

 학병ㆍ징용 등을 폭행 또는 협박으로 강요한 행위를 학병ㆍ징용을 전국적 차원에서 선전 또는 선동하거나 강요한 행위로 제한시켰다. 친일민족반역행위자들이 대부분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준 것이다. 그야말로 누더기 법률이 되고 말았다.

 

 친일규명법의 제정과정에서 보인 한나라당의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특히 법사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일부 의원들의 행위는 제헌국회에서 반민법을 제정할 때 친일세력이 반대했던 언행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세간에는 특정인ㆍ특정세력을 비호하기 위해 법안을 누더기로 만들었다는 비난이 따랐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이따위 법률을 만들어 오히려 민족반역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게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일규명법이 필요한 것은 이제라도 민족반역행위를 샅샅히 파헤쳐 역사의 사초(史草)에 기록하고 필주(筆誅)를 가해서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17대 국회에서 개정을 통해 원안의 내용을 살려야만 소기의 목적을 이룩하게 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신채호 선생의 어법대로 건국사의 '제1대사건'인 친일민족반역행위를 제대로 규명하는 것만이 민족국가의 정체성을 살리고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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