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미래학자, 정치학자중에는 21세기형 인류의 이념체계로 아나키즘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일본제국주의가 천황제를 강력히 비판하는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로 엉뚱하게 번역하면서 아나키즘은 한국이나 일본, 중국 등에서 정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혼란스러운 이데올로기처럼 인식되어 왔다.
아나키즘의 본질은 무정부나 무권력이 아니라 최소한의 정부, 최소한의 권력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정부 권력을 최소화하고 지방과 개인의 권리를 향상시키자는 이념이다.
자유롭게 태어난 인간이 정부나 사회기관으로부터 여러 가지 규제와 압박을 받는다는 것은 천부인권에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정부'의 상태가 된다면 그야말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되고 만다. 그 대신 규제와 압제를 최소화하는 제도, 이것이 아나키즘의 본질이고 이념이다.
스위스는 연방국가로서 26개의 주정부 즉 칸톤(Canton)과 시, 군, 구와 같은 다수의 콤뮨(Commune) 등 3단계로 분산 위임되어 있으며 주정부는 독자적인 행정부ㆍ의회ㆍ법원을 구성하여 운영한다.
연방정부는 안전보장, 외교관계, 조세, 체신, 병역 등 업무를 조정 감독하고, 주정부는 연방정부의 결정사항을 시행하는 한편 공공재산, 학교, 경찰, 소방, 보건, 민방위 운영 등 분야에 대해서는 독자적으로 전권을 행사한다.
정부조직은 연방의회에서 4년 임기로 선출된 7명의 각료로 연방정부를 구성하며 연방각의는 중요정책을 입안하여 의회에 제안하고, 연방의회는 7명의 각료 중 1명을 매년 윤번제로 대통령을 선출하여 대통령은 연방각의를 주재하고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한다. 2003년 대통령은 파스칼 코체핀 내무부장관이 맡고 있다.
스위스 국민은 선거ㆍ국민제안ㆍ국민투표ㆍ청원 등 4가지 형태로 참정권을 행사한다. 특히 국민제안 제도가 정착되어 10만 명 이상의 서명으로 연방헌법이나 칸톤 헌법을 개정할 수 있다.
이 제도를 도입한 1891년 아래 총 120건이 발의되고 이 중 19건이 국민투표에서 통과되었으며 101건은 부결되었다. 청원제도와 소환제도도 발달되어 모든 국민은 어떠한 국가기관에 대해서도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비리 공직자를 소환하는데 그로 인해 아무런 법적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필자는 몇 차례 스위스를 방문하면서 가장 안정되고 부패가 없고 권력투쟁이 없는 이상적인 정부형태를 스위스의 칸톤제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통령이 1년씩 윤번제로 맡다보니 대통령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당연히 부패나 권력남용, 정쟁이 따르지 않는다.
그만큼 권력과 조직이 분산되어 작은 정부가 유지되고 많은 사람이 참여하여 자신들의 고장을 경쟁적으로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어 간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지방분권 문제가 이슈가 되었다. 당장 스위스식의 완전한 지방분권이나 연방제는 어렵더라도 점진적으로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정부에 이양하는 법적, 제도적 조치가 필요하다.
국민의 높은 정치의식과 교육수준 그리고 우수한 공무원 구성으로서 지방?지역문제는 충분히 자율적, 주체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중앙정부가 모든 권력과 권한을 장악하고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대행업무나 처리하는 하부기관으로서는 진정한 참여나 분권이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중앙정부는 국방, 외교, 안보, 금융, 병역, 체신, 기간산업 등만 전담하고 학교, 경찰, 소방, 보건 등을 과감하게 지방정부에 이양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서울과 수도권의 인구집중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며 국토의 균형적인 발전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시ㆍ군ㆍ구청장 등 기초단체장의 경우 정당공천을 배제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 같은 정당공천제는 지역출신 국회의원이 자치단체장을 하수인 취급을 하거나 인사ㆍ예산 등에 개입하게 되어 명실상부한 지방자치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 또 지방까지 중앙의 정치싸움판이 연장되어 주민분열을 부채질하게 한다.
참여에 대한 폭도 크게 확대해야 할 것이다. 지난 기의 지방자치단체장 가운데 20% 이상이 각종 비리에 연루되어 사법심판을 받았지만 판결이 늦어져 대부분 임기를 채워야 했다. 유권자들은 아무런 권리행사도 못한 것이다. 스위스처럼 국민제안이나 소환제 등을 활용하는 방안도 연구해 볼만하다.
21세기 인류의 이상적인 정치형태는 중앙정부의 권력을 줄이는 대신 지방자치의 권한을 확대하여 주민참여의 폭을 넓히고 자신들의 지방을 살기 좋은 마을로 스스로 꾸려나가는 제도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