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 소설 '북악에서 부는 바람'

청계천 복구 10여년전 암시

"좀 빨리 다니려고 지하철 파는 일은 몇년씩이나 길 막아놓고 잘 만하더라. (중략) 조상의 얼을 찾아 후손 대대로 남겨주고, 묻힌 우리의 수백년 전 역사의 편린들을 찾아 놓는 일이 그보다 못하단 말이야?"

 

 청계천 복구를 10여년 전에 이미 예견한 소설이 있어 화제다. 한국추리작가협회 회장 이상우씨(굿데이신문㈜ 대표이사)가 1994년 펴낸 역사추리소설 <북악에서 부는 바람>(동아출판사 냄ㆍ사진)이다.

 

 조선 개국기 '왕자의 난'을 주요 배경으로 국보급 보물을 둘러싼 숨막히는 미스터리를 그린 액자형 소설이다. 청계천에 묻힌 광교를 배경으로 '과거'의 역사적 사건과 '현재'의 살인사건을 나란히 그리면서 청계천 복구의 타당성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한다.

 

 주인공은 '김용세'라는 똑같은 이름을 가진 과거와 현재의 두 남자. 현재의 김용세는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가 남긴 보물(가상)의 행방을 좇는 대학원생, 과거의 김용세는 이방원 편에서 소용돌이치는 국사를 지켜보는 종5품 서운관(왕실의 묘자리나 운세 등을 봐주는 관리)이다.

 

 출발점은 신덕왕후의 승하. 작가는 신덕왕후의 능에 넣어둔 보물이 지금의 광교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상상력을 발휘해 추리와 역사라는 두마리 토끼를 신나게 쫓는다. 이 보물을 둘러싸고 현재에서는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의 숨가쁜 추격전이 시작된다. 또 과거에서는 피비린내나는 왕자의 난이 생생하게 그려지면서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이 눈 앞에서 펼져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주인공 두 사람이 아리따운 여인들과 나누는 감각적인 로맨스는 딱딱한 주제를 달착지근하게 녹여내며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또 풍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한 조선 초기의 생활상 묘사와 당대를 호령하던 호남들의 흥미로운 행장은 역사소설다운 미덕을 발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