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민대상 봉사상을 수상했던 신당5동 이대일 회장이 부상으로 받은 상금 300만원 중 200여만원을 주민들을 위해 사용해 훈훈한 미담이 되고 있다. 지난 10월17일에는 지역 노인들을 위해 경로잔치를 열고 100만원 상당의 타올 400장을 만들어 일일이 전달했는가 하면 11월19일에는 지역에서 가장 어려운 독거노인 생활보호대상자 11명을 동사무소로 초청해 1인당 10만원씩 110만원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 당초에는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전액을 구청에 기탁할 계획이었지만 신당5동 주민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변 사람들의 요청으로 이 같은 행사를 갖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개인 돈을 쓸 때는 잘 몰랐는데 막상 상금을 받고 보니 어떻게 활용해야 될지 오히려 부담감이 더 컸다"면서 "주위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작은 금액이지만 기쁨을 같이 나눌 수 있어 흐뭇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고생하면서 내조만 해 오던 부인인 주영순 여사(47)에게도 결혼 후 처음으로 상금으로 옷 한벌을 선물하게 됐다며 겸연쩍어 했다. 지난 79년부터 24년 동안 중구
가변차선 조업주차등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상권회복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마장로 중앙시장 상인회 김용선 회장(54ㆍ사진). 그는 "청계천 복원등을 이유로 상인들도 모르는 사이에 마장로가 어느날 갑자기 가변차선으로 변경돼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면서 "상인들과 함께 대책을 강구하고 서울시, 중구, 시경, 성동서등에 청원서를 제출하고 항의 방문해 원상복구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초 2개 차선이었지만 가변차선이 되면서 3개 차선으로 변경돼 차량통행에 더 큰 문제를 유발하고 있고 1개 차선은 무용지물이 되고 있어 가변차선의 의미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가변차선을 없애고 4차선이 돼야만 양쪽을 주ㆍ정차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고 양방향 교통소통도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가변차선으로 인한 교통소통의 문제가 심각한데도 무차별적인 단속으로 손님이 줄어 매출의 70% 이상 급감해 도매시장 기능이 마비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 같은 문제를 조직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지난 6월26일 386명을 회원으로 하는 마장로 중
국난기이거나 혁명기 또는 역성혁명 때이면 어김없이 각종 민요나 참요 그리고 판소리 등 '민중의 소리'가 나타난다. 그것이 대부분 노랫가사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가사와 의미에는 각별한 뜻이 담긴다. 명확한 작사자ㆍ작곡자도 없이 민중의 입을 통해 불려지고 전파되는 이들 민요ㆍ참요ㆍ판소리는 시대상황 등의 이유로 파자나 위서의 형태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가사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뜻이 들어있는가 하면 비유나 은어ㆍ은유 등을 섞어 당대 지배세력의 감시와 탄압을 피하고자 하였다. 한말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울 때 의병들이 분연히 궐기하여 일제와 싸웠다. 동학혁명 때와 마찬가지로 의병들은 일제의 현대식 병기에 죽창으로 맞서면서 수많은 희생자를 냈다. 의병들이 일제와 싸울 때 민중들은 방방곡곡에서 〈새타령〉등 구국항쟁의 노래를 당시 유행하던 판소리 형식으로 불렀다. 판소리 〈새타령〉과 〈농부가〉는 지금까지 노랫말의 의미를 제대로 모르는 채 불려지고 있다. 남원산성 올라가 이화문전 바라보니 수진이 날진이 해동청 보라매 떴다 보아라 종달새 이 산으로 가며 쑥국쑥국 저 산으로 가며 쑥
우리들 가정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는 교육문제일 것이다. 대부분의 가정이 유치원생에서 대학졸업생에 이르기까지 교육문제와 직면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인에게 교육열은 각별하기도 하려니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한바탕 '입시전쟁' 또는 '입사전쟁'을 치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서울 강남 아파트값의 이상폭등 현상이나 해외이민 열풍, 원정 출산에 이르기까지 한국적 병폐의 근본 원인 중에는 과열 자녀교육 문제가 으뜸을 차지한다. 부정적인 측면에서 볼 때 교육과열 문제는 한국사회의 만병의 근원이고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국가 발전과 역동성의 원천이 된다. 그렇다고 당장 뚜렸한 해결책이 제시되거나 수술도 쉽지가 않다. 사람들은 아파트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아도 강남으로 몰려가고 특별한 대책이 없이도 '자녀교육'의 이유로 해외로 떠난다. 이러다 보니 공교육은 형해만 남게 되고 사교육 열풍이 극성을 부린다. 학부모 중에는 자녀 사교육비를 벌고자 유흥업소 접대부도 마다하지 않고 노래방에 취업하는 젊은 엄마들도 줄을 선다고 한다. 교육철학에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것이
유상열 재개발연합회장 주장 전국재개발연합회 유상열 회장(황학구역 재개발조합장)은 지난달 30일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서울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안'의 여론수렴을 위한 공청회에 참여, 임대주택 건립 세대수 문제와 다가구의 용도변경,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조례등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유회장은 임대주택과 관련, "세입자들이 처음에는 정부에서 무상으로 임대주택을 분양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신청했지만 임대 보증금과 관리비가 있어야 입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 한결같이 현금으로 주거대책비를 요구하고 있다"면서 "임대주택 건립은 현행 서울시 재개발사업 조례대로 세입자 희망에 따라 조합에서 임대주택 건립 계획을 수립토록 해 달라"고 강력히 건의했다. 이는 최근 주택재개발로 인한 임대주택이 7천여 세대나 남아 서울시가 일반 극빈 세입자에게까지 분양한 사실을 예로 들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다세대 주택 토지분할과 관련, "법률을 잘 이용할 줄 아는 부동산 투자 및 투기 기술자들이 토지를 적법하게 쪼개서 팔아먹고 주택 한 채를 매입, 건물 따로 토지 따로 쪼개서 팔아먹는 것이 바
지난달 23일 경로의 달인 10월을 맞아 동네 노인들을 신당3동사무소로 초청, 경로잔치를 베푼 신당3동 약수후원회 김동광 회장(60). 그는 어려운 살림속에서도 10여년 동안 불우이웃들을 위해 매년 경로찬치를 열고 있으며 5년전에는 매달 중학생 10여명에게 10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하고 노인정에도 일정 금액을 후원해 왔다. 지난 5년전부터는 약수시장내에 무료이발소를 열고 매달 100여만원을 들여 운영해 오고 있지만 과대한 비용 때문에 고민에 빠져 있어 독지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실정이다. 김 회장은 "이발소가 지하에 있기 때문에 공기가 좋지 않아 지상에 마련해서 어르신들이 공기 좋은 곳에서 편안히 이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그는 30여년 동안 이 지역에 살면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처음에는 본인의 사비를 털어 돕다가 형제들에게도 도움을 요청, 매월 20만원씩 약수노인정등에 10만원씩 전달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쁨과 작은 보탬이 된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끼지만 때로는 씁쓸한 마음 이루 말할 수 없을 때도 있다고 한다. 이밖에도 김회
지난 7일 태풍 매미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강원도 도계 고사리를 방문해 피해주민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왔다. 우리들이 떠날 때는 단 1시간이라도 더 봉사하자는 뜻에서 새벽 6시에 출발했다. 신당6동 새마을 부녀회(회장 이종숙) 자연보호협의회(회장 이용무) 바르게살기 위원회(위원장 심상문)등 34명의 회원들은 4시간여만에 피해현장에 도착해 좀더 많은 도움을 주겠다는 의지로 열심히 활동했다. 출발하기전 녹색어머니회 염용자 회장과 바르게살기 하문생 위원등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약 300여점의 옷가지를 가지고 갔다. 새마을 부녀회에서는 34명의 봉사자들의 식사와 음료를 준비했으며 바르게살기위원회에서는 운송수단인 차량을 그리고 자연보호협의회에서는 쌀 36포대(360㎏)를 준비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장을 가는 도중 즉석에서 십시일반 모금한 것이 50만원이 됐는데 이 금액을 동네 이장 및 주민들에게 전달하는 따뜻한 마음도 있었다. 봉사활동에 동참한 회원들은 6시간 동안 벽돌 나르기 볏단 묶어서 쌓기 페인트 칠하기등 힘들었지만 정말 보람있는 일이었다. 지금은 많이 복구된 상태라고 현지 주민들은 말했지만 우리들은 무슨 일을 어떻게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의 일이니까 400여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런데 한 부문이 어쩌면 요즘의 상황과 저리도 닮았을까. 1591년 3월 일본의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조선의 조정에서는 서인의 황윤길을 정사로, 동인의 김성일을 부사로 삼아 일본의 정황을 탐지하는 '특별 시찰단'을 파견하였다. 이듬해 3월에 귀국한 시찰단의 의견은 정반대였다. 정사 황윤길은 일본이 많은 병선(兵船)을 준비하고 있어 반드시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안광이 빛나고 담력이 있어 보인다고 침입가능성을 보고했다. 이에 반해 부사 김성일은 일본이 침입할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도요토미는 사람됨이 쥐새끼눈과 같아서 전혀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이때 서장관으로 동행하였던 허성은 황윤길과 의견을 같이 하였고, 김성일을 수행하였던 황진은 김성일이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는다고 분노하였다. 시찰단의 상반된 보고를 받은 조정에서는 정파에 따라 서인층은 황윤길의 말을, 동인측은 김성일의 말을 쫓으면서 새로운 정쟁거리로 삼았다. 동서의 정쟁이 격심했던 상황이라 시찰단이 살피고 온 실체적 진실을 알아보기 보다는 자파의 사절을 비호하고 상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