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삼남 박사께서 해군참모총장 시절에 반잠수정 침투사건이 있었다. 음력 11월 19일 오전에 노량바다 이락포에서 "리순신 제독 진혼제"를 전직 현직 참모총장님과 리순신 연구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올린 적이 있다. 바로 그날 밤에 북한의 '반잠수정' 침공으로 여수 앞바다에 몰래 숨어들어오다가 감시병의 탐망경에 걸려 쫓겨서 공해로 도망쳤다. 해군과 해경이 추격해 공해에서 300미터 수심해저에 침몰시켰다. 그날 밤 담당 감시병의 빛난 눈동자가 환하게 바다를 밝게 감시한 덕분에 순간 '북한 반잠수정 침입'을 발견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 순간을 놓쳤으면 반격할 수도 없었고 상륙하여 여수시를 공격했을지, 무슨 흉계를 간첩과 연계해 꾸몄을지 모를 일이다. 죽은 적군은 입을 열지 않아 흉계를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그 반잠수정은 인양되어 지금 연구하고 진해 모처에 전리품으로 전시해 놓았다. 우리는 일본인들이 그들의 조상 선열을 배우는 태도와 비교하면 사뭇 다른 것이 있음을 본다. 일본은 임란이 끝난 즉시 기획하여 6년후부터 '풍신수길(豊臣秀吉)과 가등청정(加藤淸正)'의 동상과 기념관을 세우고 임란의 전승과 패전을 분석하고 그들의 정신
이번 천안함의 피습 상황을 보자. 우리에게 역사적 교훈이 생각난다. 평화로운 우리 영해에서 함정이 기습 공격을 받아 침몰된 사건은 국민으로 하여금 경악과 분노를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이고,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일이다. 연평해전은 우리가 영해를 침범해온 침략자를 격퇴한 것이고, 동해의 잠수함도 영해를 침범해 왔기 때문에 있었던 사건이다. 천안함 사건은 무엇보다도 우리 영해를 초계하는 안전지대에서도 북한의 기습을 당할 수 있다는 교훈이다. 적군은 고도의 신무기로써 수중공격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판명된 사건이란 점에서 중요하다. 우리를 공격할 무기가 적에게 있다면 우리도 그것을 방어할 무기를 발명하여야 한다. 400년전 민족의 영웅 리순신 제독은 왜적의 쾌속 전선을 막아내기 위해 왜란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거북선 3척을 준비해 놓았는데, 정말로 왜란이 일어나자 험난한 그 7년의 전쟁을 승리했다. 당시의 제독은 열악한 군비와 중앙조정의 군비지원도 원만하지 못했던, 사실 그런 지원은 없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그런 약세인 수군을 지휘하여 이긴 영웅이다. 그러나 싸우면 항상 이겼던 승리의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적군보다 한발 앞선 전술이 있었다. 당항포승첩 장계
"최고의 효도는 살아 계실 때에 하는 생전효도며, 물질과 함께 정신적으로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 부모님께 효도는 말보다 실천이며 자주 찾아뵙는 것도 효도이다. 찾아뵙지 못할 경우에는 정보통신을 이용한 전화 한통화도 효도의 지름길. 경노효친사상은 말이나 구호보다 실천해야 보람이 있다. 효도는 백번을 강조해도 넘치지 않으며 효도는 한 만큼 돌려받는다. 자녀는 부모의 행실을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5월은 신록의 계절로 가정의 달이며, 계절 중에 제일 으뜸이 되는 계절이다. 결혼식도 많고 부모와 자녀와 함께 밖을 찾을 수 있는 좋은 계절이다. 이런 계절에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늙으신 부모님을 찾아뵙고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앞선다. 예전에는 대가족을 이루고 살던 시절이 있었다. 가정교육이 전인교육이고 밥상머리교육도 실천교육이며 어른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환경이 가정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핵가족화 도시화를 거치면서 어른과 멀리 떨어지거나 직장에 따라 주말부부가 있는가 하면 자녀 학교에 따라 가정이 나뉘거나 각자의 생활에 따라 패턴이 달라지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자녀를 많이 두지 않고 하나
"이상한 것은 그 할머니가 싼 똥 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았다는 거예요." 남대문5가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최두리(54)씨는 진실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어느 날 밤, 남대문 교회의 목사가 최씨에게 할머니 한 명을 데리고 찾아왔다. "이 할머니 하룻밤만 여기서 재워주세요. 다음 날 시설로 보내겠습니다." 최씨는 목사의 말을 듣고 아는 언니의 2층집에 그 다리를 못 쓰는 할머니와 간경화를 앓고 있던 아들을 재워줬다. 그것이 최씨가 할머니와 그의 아들을 4년간 보살피기 시작한 운명 같은 순간이었다. 사정이 생겨 최씨는 다리를 못 쓰는 할머니와 그 아들을 친 부모와 자식 챙기듯 그렇게 보살폈다. 주변에서는 아무도 이런 최씨를 이해하지 못했다. "간경화를 앓고 있던 아들은 배가 이만큼 불렀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방으로 들어가 보니까 할머니 옆에서 죽어 있더라구요." 할머니는 아들이 죽은 줄도 모르고 옆에서 자고 있었다. 최씨는 교회 목사와 함께 아들의 장례를 치러줬고, 이후 할머니를 친부모처럼 보살폈다. "직접 씻기고 밥도 먹이고 심지어는 똥도 치웠어요. 사람들이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다른 곳은 몰라도 회현동에는 적어도 한 사람은 있다. 바로 통장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이희갑(62)씨. 어렸을 때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영등포와 용산 등에서 일하다 회현동에서 가게를 차린 뒤 한 자리에서 지금까지 30년이다. 동 주민들이 오며 가며 매일 보는 얼굴에 친근감을 느꼈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건장한 30대였던 이씨는 마을 청년답게 동네일에 솔선수범 참여하기 시작했고 그런 이씨에게 마을 사람들은 고민을 털어놓거나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하는 일이 잦아졌다. "혼자 사는 할머니들이 많기 때문에 밤 12시에 전화가 오기도 해요. 보일러가 고장 나거나 수도가 샌다는 등의 전화인데 덕분에 제 전화기는 함부로 꺼 둘 수도 없어요." 그 런 그에게도 고민거리는 있다. 5년 전 아들의 신장이 갑자기 안 좋아져 투석을 받게 된 것. 아들의 고통스러운 투석 과정을 지켜본 이씨는 결단을 내렸다. 자신의 신장을 떼어 주기로 한 것. 동네일에 온통 신경을 쓰느라 정작 자신의 가정은 보살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지칠 대로 지쳐버린 이씨는 수술실
요즘 지하철을 타면 색다른 즐거움을 느낍니다. 콩나물시루 같은 전철에 몸을 맡기는 것이 여전히 불편하지만 기분은 예전보다 상쾌합니다. 전철이 빨리 오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도 줄었고, 왠지 낯선 사람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지하철이 조금씩 문화의 옷을 입기 시작하면서 나타났습니다. 바쁜 아침 출근길에 귀에 익숙한 클래식 선율이 지하철 역사에 울리면 분주한 마음은 평온해집니다. 퇴근길,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적힌 시(詩) 한 편은 즐거운 상상 속에 빠져들게 합니다. 이처럼 지하철이 문화공간이자 예술쉼터로 바뀌면서 삶이 풍부해집니다. 좋은 변화이자 아름다운 경험입니다. 문화와 예술을 일상의 삶 속에서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 공연장에 가지 않더라도, 긴 줄을 서가며 대형 전시회에 가지 않더라도 음악을 듣고 문학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삶을 빛내는 값진 선물입니다. 최근 문화도시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습니다. 외국의 문화도시들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부러움과 찬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문화기획이나 예술경영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외국의 문화도시를 학습하고 한국에 적용시키기 위해
민주당 김연선 시의원(제2선거구) 후보는 "의학박사 김연선! 중구의 미래를 처방하겠습니다. 서울시의 힘을 '내 고향 중구'에 보태겠습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서울의 중심 중구를 살기좋고 쾌적한 환경의 도시로 조성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선거에 출마하면서 △노인일자리 전문기관인 중구시니어클럽 개설 △청년일자리 창출을 위한 중구 청년창업지원센터 설립 △사교육비 절감을 위한 인터넷강의 무상 실시 등의 공약을 내걸었다. 중구시니어클럽 개설과 관련, "노인 적합형 일자리를 창출해 노인의 사회참여를 확대하면 건강증진과 소득지원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며 "현재 실시되고 있는 공익, 복지형 방식은 물론이고, 중구노인들이 공동으로 수익을 창출 할 수 있는 사업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중구 청년창업지원센터 설립과 관련, "현재 서울시에서 하이서울청년창업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청년일자리 창출은 서울시만의 문제로 보기에는 현실적으로 너무나 절박하다"며 "우수한 창업아이템을 가진 20∼30대 예비창업자에게 서울시와 중구가 공동으로 창
봄 꽃이 화려합니다. 목련은 화사하게 담장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노란 개나리는 다소곳한 미소를 보냅니다. 무더기로 피어있는 진달래는 언제 피었는지도 모르게 우리 곁에 잠시 왔다 사라집니다. 이제 남산과 퇴계로에도 벚꽃이 휘날리면 봄은 절정을 맞게 됩니다. 마음은 이미 남산자락을 휘돌아 녹음이 짙어가는 한강변을 건너 여의도 벚꽃축제에 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친 일상에서 자연이 빚은 예술을 경탄하며 추억을 새기고 기쁨을 노래하며 새로운 충전을 기약합니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벚꽃 길로 유명한 경남 하동 쌍계사 길과 충북 옥천의 금강 길, 전남 광양 매실마을, 경기도 이천 산수유마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곳에서도 꽃과 축제와 어울림의 한마당이 펼쳐집니다. 천안함 사건이 아니었다면 전국은 지금 꽃에 물들고 술에 취하며 사람 속에서 흥을 돋우는 축제의 난장이 한창일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축제를 무척 좋아합니다. 매년 열리는 축제가 대략 800여 개라고 하니 그 숫자도 놀랍지만(비공식적으로 열리는 것 까지 포함하면 1천 개라고 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가리지 않고 밤낮을 잊은 채 펼쳐집니다. 축제도 벚꽃축제나 단풍축제와 같은 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