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 6. 11 6월은 나라사랑 호국보훈의 달이다. 녹음이 푸르른 6월이지만 우리에게는 늘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현충일과 6.25가 있는 호국보훈의 달은 온 국민이, 역사의 장마다 새겨져 있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기리고 추모하는 달이며 나라사랑의 참뜻을 다짐해 보는 달이다. 현재 우리는 물질적 풍요와 자유를 누리고 있지만 역사를 더듬어 올라가면 이러한 여건이 상상하기도 어려운 꿈이자 간절한 바람이었던 적이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국권을 빼앗긴 식민지 시대의 역사와, 이념의 갈등 속에서 서로를 겨누어야 했던 전쟁의 역사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선열들은 일제의 압제로부터 독립을 쟁취했으며 전쟁의 폐허 속에서 세계가 놀랄 만한 경제성장과 국가발전을 이루어 냈다. 이 모든 것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고귀한 희생과 나라사랑 정신에서 비롯된 결과였음을 생각해 볼 때 그 분들을 기억하며 그 공헌에 감사하는 것은 우리 국민의 당연한 도리이자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현충일과 호국보훈의 달의 의미는 퇴색되고 단순히 공휴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또한 분단이라는 현실 속에서 6.25 전쟁은 단순히 교과서에 나오는 해묵은 과거사로
/ 2014. 6. 5 6월은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희생한 순국선열과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산화한 전몰호국용사의 숭고한 애국·애족정신을 기리고 그분들의 고귀한 뜻을 되새기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그리고 특히 매년 6월 6일은 정부기념일인 현충일이다. 우리나라는 1948년 8월 정부수립 후 2년도 채 안 돼 6·25 동란을 맞았고 40만명 이상의 국군이 희생됐다. 1953년 휴전이 성립된 뒤 3년이 지나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자 정부는 1956년 4월 19일 대통령령 제1145호로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건'을 개정해 매년 6월 6일을 현충기념일로 지정하고 기념행사를 가지도록 했다. 1975년 12월에는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건'을 개정해 공식적으로 현충일로 개칭됐다. 이후 1970년 1월 9일 '국립묘지령'에 의해 연 1회 현충식이 거행됐으며 1982년 5월 15일 '각종 기념일에 관한 규정'에 의거, 현재에 이르게 됐다. 1956년 1회부터 1991년까지는 한국전쟁 전몰용사 추모가 주도였으나 이후로는 월남전 전몰용사 등 국가유공과 호국영령 모두를 추모하는 행사로 치러지고 있다. 6월에는 많은 장병이 호국의 수호신으로 산화한 6·25 전쟁이 포함
/ 2014. 6. 5 그동안 고가의 치료라고 인식돼 왔던 임플란트가 오는 7월부터 '75세 이상 평생 2개 치아까지 보험 적용'이 예정되면서 환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치아를 상실한 경우 지금까지는 주로 빠진 부위 앞 뒤 치아를 기둥으로 삼아 치아 3개에 해당되는 '브릿지'라는 보철물을 해 넣거나 다수의 치아가 빠진 경우 틀니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치료방법이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티타늄이라는 금속이 뼈와 결합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 임플란트라는 새로운 상실치 치료법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임플란트란 치아가 빠진 부위의 턱뼈에 특수금속으로 만들어진 인공치아 뿌리를 심어 뼈와 고정시킨 후 그 위에 치아형태를 만들어 연결해 줌으로써 외관상으로나 씹기 등의 기능면에서도 본래 자신의 치아와 거의 차이가 없도록 회복시켜주는 시술방법을 말합니다. 임플란트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술 전 검사인 전신상태, 구강엑스레이, 모델 검사 등을 통해 임플란트를 하게 될 자리의 뼈의 양과 상태가 어떠한지 전신건강에는 문제가 없는지 여부를 판단하게 됩니다. 그 다음은 식립 단계로 인공치아 뿌리를 뼈 속에 심고 잇몸이 잘 덮이도록 하는 1차 수술, 일정기
소동동주민센터 김동구 주무관이 소방방재청장 표창을 받고있다. / 2014. 5. 28 서울 사대문 안의 대표적인 먹자골목인 북창동을 대화재로 부터 구한 소공동주민센터 김동구 주무관(51·7급)이 지난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남상호 소방방재청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주말인 지난 17일 전국동시지방선거 선거인명부 간인 작업을 위해 출근한 김씨는 행정민원팀장과 동주민센터 옥상 청사를 살피던 중 오후 4시 25분경 동주민센터 옆 건물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는 곧바로 1층으로 뛰어 내려가 직원들에게 '화재가 났으니 즉시 119에 신고하라'고 말한 후 옆 건물로 달려갔다고 한다. 2층 건물의 1층 음식점에서 불길이 번지고 있는 가운데 주방에 있던 음식점 사장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을 김씨가 발견, 즉시 카운터 쪽에 있던 소화기를 이용해 불을 끄기 시작했다. 불길이 계속해서 번지자 가게 옆 호프집에 있던 소화기를 이용해 2차 진화를 시도, 그래도 불길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자 동주민센터에서 소화기를 가져와 3차 진화 작업을 벌였다. 김씨가 한창 불을 끄고 있던 4시 32분경 소방차 7대, 소방관 20명이 현장에 도착해
자신의 전재산을 기부한 오진남씨. / 2014. 5. 14 "조금 더 넉넉한 사람이 조금 덜 넉넉한 사람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 최근, 자신이 다니는 한 성당의 발전을 위해 현재 거주 중인 시가 15억원 상당의 건물을 기부해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신당5동에 거주하면서 신당동 성당에 다니고 있는 카톨릭 신자인 오진남(요아킴, 76) 옹이다. 오 옹은 황해도 출신으로 한국전쟁 전 서울 중구에 자리를 잡은 뒤 70여년 동안 살고 있는 중구의 토박이다. 그가 기부한 건물은 1985년에 그가 직접 지은 50여평 상당의 2층 건물로 현재 오 옹을 포함 3가구가 머물고 있다. 오옹은 재산을 기부하게 된 계기에 대해 "죽을 때 안고 갈 수는 없지 않느냐"며 "재산을 기부하게 된 특별한 배경은 없다"고 재산 기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겸손하게 밝혔다. 그는 "현재 일본에서 대학 교수로 생활하며 거주 중인 아들이 건물을 상속 받아야 할 만큼 어려운 형편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의 끝에 기부를 결정했다"며 "조금 더 넉넉한 사람이 조금 덜 넉넉한 사람을 돕는 것은
남대문 시장 E동 수입상가 이병규 회장. / 2014. 5. 14 "그동안 시장 활성화가 상품의 질과 대고객서비스를 통해 결정됐다면 앞으로는 쇼핑환경과 시설 등이 곁들여진 영업 전략이 뒤따라야 합니다." 전통시장의 큰 숙제이기도 한 쇼핑환경의 열악한 문제점을 지적한 E동 수입상가 이병규 상인회장은 지난 4월 1일 회장에 취임한 인물로 올해로 33년째 유통업을 하고 있다. 우연히 지인을 만나 시장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는 이 회장은 총각 때부터 지금까지 남대문상가에서만 근무하면서 상가의 발전을 지켜봐 온 산증인이다. 초창기부터 고객과 상가의 발전을 위해 여름에는 에어컨 없이 겨울에는 히터 없이 온몸으로 더위와 추위를 이겨내며 노력해온 것이 자연스럽게 상가의 활성화로 이어져 남대문 수입상가에서 우위를 점하게 됐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그는 "고객들 마음은 시대에 맞춰 발 빠르게 변해가지만 시장시설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던 게 현실"이라며 "하지만 최근엔 상가 내 시설이 무척 좋아져 과거에 비하면 고마울 따름이다"고 전했다. 그러나 '남대문시장이 잠자는 호랑이로 전락했다는 것'이 이 회장의 생각이다.
/ 2014. 5. 1 남대문 모피·가죽전문가 고객서비스 최우선 지역사회활동 활발 최근 명예지점장에 위촉 "모피와 가죽은 겨울상품이지만 구매할 때는 비수기를 이용하는 것이 알뜰구매 노하우죠." 박순환 사장(사진)은 항상 이웃집 아저씨 같은 미소로 고객을 맞이해 시골장터에서 느낄 수 있는 구수한 냄새를 물씬 풍긴다. 올해로 41년째 의류업에 종사하며 한평생을 지내온 박 사장은 현재, 남대문시장 E동 1층(세원사136호)에서 모피와 가죽을 판매하고 있다. 3년 전부터는 외항점포 상인회 부회장을 맡아 오고 있다. 오랜 의류 제조와 유통을 통해 동종업계에서 잔뼈가 굵을 대로 굵은 그는 69세임에도 실제로는 50대 초반으로 보일 만큼 '동안'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시장생활 41년이면 강산이 4번이나 바뀌었을 만한 세월이다. 박 사장을 만나 보니 외모와 달리 소탈하고 농담을 즐겨 했다. 또, 잊혀 가는 전통시장에서 끈끈한 정으로 고객의 '발목'을 붙들 수 있는 전문가라는 생각이 든다. 노점에서 출발, 바르게 살자는 뜻인 '정도'를 가훈 삼아 내 점포를 갖기까지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온 그는 의류업에 종사해 온 전통시
/ 2014. 5. 1 어려운 난관을 함께 힘을 내 헤쳐 나갑시다! 우리 국민은 유구한 민족문화를 발전시켜 온 한민족으로서 그 전통을 면면히 이어 왔습니다. 제가 아는 한 우리 민족은 비록 자신이 불편할지언정 타인을 어렵게 두지 않았고 순수한 인간미가 철철 흘러넘치는 민족이었습니다. 서로를 위하는 맘이 하늘과 같이 크고 넓었으며, 다함께 잘 살아 보자며 상부상조를 외쳤던 민족이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외부의 문화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며 민족의 고유한 정체성과 전통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나 자신을 우선시하는 개인주의가 만연하게 됐고 타의 모범이 돼야 할 자리에 오른 사람들까지도 자신의 직무를 소홀히 하며 주위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그 결과 두 번 다시 반복돼선 안 될 참사를 며칠 전, 겪게 되었습니다. 이제 막 미래에 대한 꿈을 갖고, 주위의 여망을 사던 열여덟 청춘들이 그 날개를 미처 펼쳐보지도 못한 채 우리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잘못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을 지도하고 이끌었어야 할 몇몇 어른들로 인해 그러한 일을 맞게 됐습니다. 파렴치하고 비인간적인 여객선 관리자들이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채 생사의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