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쁘게 달려온 결혼 준비라는 마라톤이 끝났습니다. 이제 막 축포가 터지고, 하객들의 박수 소리가 잦아들면, 두 사람 앞에는 아주 달콤한 '최종 보스'가 등장하죠. 바로 '허니문'입니다. 그런데 이 마지막 관문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습니다. 한 명은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칵테일을, 다른 한 명은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꿈꾸고 있으니까요.
이 거대한 취향의 대륙 이동 앞에서 우리는 웨딩박람회에서 받아온 수십 장의 팜플렛을 뒤적입니다. 휴양과 모험, 이 양극단 사이에서 우리의 '행복 시차'를 맞추는 일. 오늘은 그 달콤한 줄다리기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저는 E(외향형)라서 무조건 나가야 해요!" "저는 I(내향형)라 숙소 밖은 위험해요."
우스갯소리 같지만, 허니문만큼은 MBTI의 J(계획형)와 P(즉흥형)보다 '휴양형 인간'과 '모험형 인간'의 구분이 더 중요할지 모릅니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야 '스드메'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었지만, 허니문은 지극히 개인적인 '보상 심리'가 작용하는 영역이거든요.
한쪽은 오롯이 서로에게 집중하며 푹 쉬는 것이 최고의 허니문이라 생각하고, 다른 한쪽은 평생 한 번뿐인 기회에 새로운 경험을 꽉 채워 넣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웨딩박람회에서 본 몰디브 리조트 팜플렛과 웨딩박람회에서 본 아프리카 사파리 투어 브로슈어가 동시에 눈앞에 아른거리는 순간이죠. 이 간극을 확인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웨딩박람회가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현실적이고 중요한 질문일 겁니다.
"난 무조건 휴양지 갈래.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휴양'을 선택하는 분들의 가장 큰 이유는 단연 '회복'입니다. 맞습니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넘게 이어진 결혼 준비는 신랑 신부의 체력과 정신력을 완전히 소진시키죠. 웨딩박람회 허니문 상담사님도 "요즘 신혼부부들은 '일단 쉬고 싶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하신다"고 귀띔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볼 지점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정말 '휴양' 그 자체일까요, 아니면 결혼 준비로 인한 '번아웃' 상태의 일시적 탈출일까요? 만약 후자라면, 3일 내내 선베드에 누워있다 보면 슬슬 좀이 쑤실지도 모릅니다. "이럴 거면 그냥 호캉스나 할걸" 하는 뒤늦은 후회와 함께요. 나의 '쉼'에 대한 욕구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솔직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도 허니문인데, 남들 다 가는 곳 말고 특별한 데 가야지!"
반대로 '모험'을 외치는 분들도 있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일출을 보고, 낯선 도시의 골목을 1만 보 이상 걸으며, 현지 맛집을 찾아다니는 빽빽한 일정. 생각만 해도 아드레날린이 솟구칩니다. 웨딩박람회 부스에서 본 '페루 마추픽추 10일 완성' 같은 패키지는 분명 매력적이죠.
하지만 이 '모험' 역시 진정한 자기 만족인지, 혹은 SNS에 올릴 '인생샷'을 위한 것은 아닌지 점검해봐야 합니다. 빡빡한 일정에 지쳐 서로 예민해지기라도 한다면, 모험은 '고행'이 되고 맙니다. 허니문은 '극기 훈련'이 아닙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특별함보다, 두 사람에게 편안한 특별함이 더 중요하니까요.
그렇다면 이 좁혀지지 않는 '행복 시차'는 어떻게 맞춰야 할까요? 많은 커플이 '반반'을 시도합니다. 3일은 휴양지에서 푹 쉬고, 3일은 액티비티가 가득한 도시로 이동하는 식이죠. 실제로 웨딩박람회에서는 이런 '하이브리드형' 상품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꼭 5:5일 필요는 없습니다. 7:3의 현명한 배분도 훌륭한 답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허니문은 당신이 원하는 '휴양' 위주로 가되, 내가 원하는 '스쿠버 다이빙'은 꼭 하자." 혹은 "이번엔 '모험'을 떠나되, 숙소는 무조건 5성급으로 편안하게 잡자."처럼 말이죠. 웨딩박람회의 맞춤형 일정 조율 서비스가 인기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일 겁니다. 중요한 것은 비율이 아니라,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고 '배려'했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웨딩박람회에서 수많은 정보와 혜택을 얻는 것은 분명 현명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훌륭한 여행 상품도 두 사람의 마음을 대신 맞춰주진 못합니다.
결국 '휴양'이냐 '모험'이냐는 질문은 '어디서'가 아니라 '어떻게' 행복할 것인지, 그리고 '누구와' 함께하는지를 묻는 질문과 같습니다. 한 명이 100% 만족하는 여행보다, 두 사람이 80%씩 만족하며 함께 웃는 여행이 더 성공적인 허니문 아닐까요?
이제 웨딩박람회에서 받아온 두꺼운 팜플렛은 잠시 덮어두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볼 시간입니다. 그렇게 서로의 행복에 주파수를 맞추다 보면, 두 사람만의 완벽한 '행복 시차'를 찾게 될 테니까요. 그곳이 몰디브이든, 히말라야든 무슨 상관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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