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참 묘한 단어 조합이 많습니다. '결혼'이라는 명사와 '준비'라는 동사처럼 말이죠.
'결혼'은 그 자체로 완성된 듯한 느낌을 줍니다. 사랑의 결실, 새로운 시작, 낭만적인 어떤 '상태'를 떠올리게 하죠. 반면 '준비'는 과정입니다. 행동이고, 수고로움이며, 때로는 갈등을 내포합니다. 우리는 평생 '행복한 결혼'이라는 한 장의 그림을 꿈꾸지만, 현실은 그 그림을 완성하기 위한 수만 번의 붓질, 즉 '준비'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그 붓질의 거대한 견본시가 바로 '부산웨딩박람회'였습니다.
처음 부산웨딩박람회에 발을 디뎠을 때의 공기는 분명 반짝였습니다. 순백의 드레스, 영롱한 예물, 화려한 스튜디오 배경들. '결혼'이라는 명사가 주는 설렘 그 자체였죠. 하지만 곧 수많은 부스에서 쏟아지는 질문 세례를 마주합니다. '예산은요?', '날짜는요?', '하객은 몇 명이죠?'
순간, '결혼'이라는 명사는 뒤로 물러나고 '준비'라는 동사가 가진 현실적인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합니다. 이 거대한 부산웨딩박람회 안에서, 우리는 모두 명사와 동사 사이의 길을 잃은 탐험가 같았습니다.
결혼 준비의 '고유명사'처럼 여겨지는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는 빙산의 일각이었습니다. 부산웨딩박람회는 그 빙산 아래 숨겨진 거대한 몸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신혼여행지, 예단, 예물, 혼수, 청첩장, 사회자, 축가, 폐백, 식전 영상... '준비'라는 동사는 끝없이 파생어를 만들어냅니다. 부산웨딩박람회를 한 바퀴 돌았을 뿐인데, 머릿속은 '해야 할 일' 리스트로 포화 상태가 됩니다. '우리가 이걸 다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덤이죠. 어쩌면 부산웨딩박람회는 '결혼'의 낭만 대신 '준비'의 실체를 확인시켜주는 장소일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부스를 돌며 상담을 받다 보면, 머릿속에 '평균'과 '표준'이 데이터처럼 쌓입니다. 부산웨딩박람회의 장점은 최신 트렌드를 한눈에 보는 것이지만, 단점은 '남들 하는 만큼'이라는 기준에 쉽게 휩쓸린다는 것이죠.
'이 정도는 하셔야죠', '요즘 이게 유행이에요'라는 친절한 조언 속에서 '우리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라는 본질적인 질문이 고개를 듭니다. 부산웨딩박람회 현장에서 가장 찾기 어려웠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둘만의 답'이었습니다. 모두가 정답을 말하는 곳에서 우리만의 정답을 찾는 것, 그것이 '준비'의 가장 큰 숙제였습니다.
하지만 그 혼돈 속에서 빛을 본 것도 있습니다. 바로 '함께'라는 감각입니다. 수만 가지 선택지 앞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대화하고, 때론 다투고, 결국 타협점을 찾습니다.
부산웨딩박람회는 단순히 물건을 계약하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결혼'이라는 명사를 '우리'라는 공동 주어로 만들기 위해, '준비'라는 동사를 함께 연습하는 거대한 리허설 현장이었죠. 취향을 조율하고, 예산을 합의하며, 미래를 그리는 과정. 이번 부산웨딩박람회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아마도 '함께 결정하는 법'일 겁니다.
부산웨딩박람회를 빠져나오는 길, 손에는 각종 브로셔가 한가득이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가벼워졌습니다. '준비'는 언젠가 끝나는 유한한 동사입니다. 하지만 '결혼'은 우리가 평생 안고 가야 할, 삶 그 자체인 명사입니다.
어쩌면 부산웨딩박람회의 그 모든 소란스러움은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삶을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우리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가 아닌 '삶'으로 써 내려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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