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 서면, 옷은 단순히 몸을 가리는 천이 아니라 ‘나를 표현하는 언어’가 됩니다. 누군가는 자신을 단단하게 지탱하는 검정 정장을 고르고, 또 누군가는 부드러운 아이보리로 마음의 여유를 담아냅니다. 흥미로운 건, 색이 단지 ‘취향’이 아니라 ‘관계의 온도’를 말해준다는 사실입니다. 누군가와 평생을 약속하는 날, 어떤 색을 입느냐는 결국 어떤 마음으로 그 약속을 품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니까요.
전주웨딩박람회에서 마주한 예복의 세계는 그야말로 ‘색채의 대화’였습니다. 전통적인 블랙과 네이비의 벽을 넘어서, 신랑과 신부의 개성을 드러내는 팔레트가 무한히 확장되고 있었죠. 흰 셔츠와 검정 턱시도의 고정된 이미지 대신, 은은한 모카빛, 파스텔 블루, 그리고 버건디 같은 새로운 색들이 ‘격식과 자유의 경계’를 부드럽게 흔들고 있었습니다.
결혼식의 예복은 단순한 패션이 아닙니다. 그것은 두 사람이 공유하는 ‘감정의 톤’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매개체입니다. 어떤 커플은 ‘순수와 단정’을 담은 화이트·크림 계열을 택했고, 또 다른 커플은 ‘우아한 온기’를 표현하기 위해 베이지와 카멜 톤을 선택했습니다. 한복 디자이너의 부스에서는 쪽빛 저고리와 은분 치마가 한쌍으로 놓여 있었는데, 그 대비는 마치 서로 다른 두 개의 선율이 만나 완벽한 화음을 이루는 듯했습니다.
색은 그렇게 ‘둘의 균형’을 상징합니다. 너무 강렬하면 한쪽의 존재가 묻히고, 너무 연하면 인상에 남지 않죠. 결국 좋은 색의 조합은 ‘함께할 때 가장 자연스러운 색’을 찾는 과정이었습니다. 마치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처럼, 둘이 쌓아온 시간의 농도를 담아내는 셈입니다.
전주웨딩박람회에서 인상 깊었던 점 중 하나는 남성 예복의 다채로움이었습니다. 과거에는 ‘포멀’의 상징이었던 블랙 슈트가 절대적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신랑의 개성을 반영하는 실험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은회색 수트에 매트한 질감의 브라운 타이, 혹은 네이비에 은은한 패턴이 깃든 셔츠. 단정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조합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특히 ‘톤온톤’과 ‘톤인톤’ 스타일링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예를 들어, 짙은 청록 재킷에 같은 계열의 그린 포켓치프로 포인트를 주거나, 크림색 슈트에 베이지 셔츠를 매치해 한층 부드러운 인상을 완성하는 식이죠. 이런 색의 미세한 차이는, 신랑이 ‘오늘의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보여주는 조용한 언어였습니다.
신부 예복의 색채는 훨씬 더 유연했습니다. 순백의 드레스는 여전히 클래식한 중심에 있었지만, 그 안에서도 빛의 농도와 질감이 다르게 표현되었습니다. 전주웨딩박람회 한 부스에서는 아이보리와 샴페인 톤의 미묘한 차이를 보여주며, 조명에 따라 드레스가 어떤 인상을 주는지 시연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화이트에 가까운 색의 변주’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크리미한 뉘앙스의 화이트, 혹은 은빛이 섞인 펄 화이트 등은 신부의 피부 톤과 조화를 이루며, 각자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했습니다. 거기에 플라워 코르사주나 헤어 장식으로 미묘한 색감을 더하면, 한 벌의 드레스가 완전히 새로운 표정을 갖게 됩니다.
결국 예복의 색은 두 사람의 약속을 입는 일입니다. 서로의 개성과 어울림을 고려해 선택한 팔레트는 단순한 ‘옷의 조화’를 넘어, 앞으로의 관계를 그리는 첫 번째 그림이기도 합니다.
전주웨딩박람회에서 본 수많은 커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그 색을 찾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서로를 닮은 색’을, 또 다른 이는 ‘서로를 보완하는 색’을 골랐죠.
그 다양한 색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장면은 하나의 거대한 캔버스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새겨진 약속은 유행을 타지 않는 색으로 오래 남을 것입니다. 흰색도, 검정도 아닌, 오직 ‘우리의 색’으로 말이죠.
색을 입는다는 건, 마음의 상태를 드러내는 일입니다. 결혼식이라는 순간에 어떤 색을 입을지 고민하는 건, 어떤 마음으로 서로를 마주할지를 묻는 것과 같습니다. 전주웨딩박람회는 그런 물음에 대한 수많은 답을 색으로 보여주었고, 그 답들은 결국 하나의 문장으로 귀결됩니다.
“오늘의 색은, 우리 둘이 함께 고른 약속입니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