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성낙합 중구청장 영결식

중구자치신문 기자 jgnews@jgnews.co.kr 2006.03.22 20:35:36

홍조근정훈장 추서…참석자들 "고인의 뜻 이어 최고의 중구건설" 다짐

 

◇지난 14일 충무아트홀에서 중구청장으로 거행된 영결식에서 중구민들이 헌화하고 있다.

 

지난 10일 순직한 故 성낙합 중구청장의 영결식이 많은 중구민들이 참여, 헌화한 가운데 지난 14일 충무아트홀에서 중구청장(葬)으로 거행됐다.

 

 이날 날씨가 쌀쌀한 가운데 56사단 군악대 주악에 맞춰 영결식이 거행된 가운데, 故 성낙합 중구청장에게‘홍조근정’훈장이 추서됐다.

 

 김충민 구청장 권한대행은 영결사를 통해 "우리 중구가족 모두는 너무나 참담하고 비통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서 있다"며 "믿기지 않은 비보에 황망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는데 오늘 구청장님의 영정 앞에 다시 서니 오직 가슴이 메어질 뿐이다"고 슬퍼했다.

 

 또한"중구에서 만큼은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는 신념으로 만든 사회안전망과 정체된 도심을 재생시켜 최고중구의 명성을 되살려내겠다"며 "힘찬 포부로 일궈온 희망의 씨앗들이 이제 막 싹을 돋우었는데 꽃과 열매를 거두기도 전에 홀연히 떠나셨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는"돌이켜보면 구청장님은 중구공무원들에게 신선한 바람이고 충격이었으며 우리들의 큰 스승이었다"며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창의적이고 소신에 찬 업무 추진력은 항상 어려움을 피해 쉬운 길로만 가려는 우리들에게 매서운 채찍이 됐다"고 말했다.

 

 오세홍 의장은"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경쟁시대에서 중구가 살아야 서울이 산다는 뜨거운 포부를 남기고 훌쩍 떠난 고인 생각에 비통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며"진정한 중구인으로서 한참 꽃을 피워가고 있을 때 가신만큼 중구의회 의원 모두는 고인이 바랬던 으뜸중구 구현을 위해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유영 강서구청장, 이남교 중부교육청 교육장, 이학봉씨가 각각 조사를 했고, 영배 큰스님들의 반야심경 독성과 홍기범 신부와 장정일 목사는 기도를 했다.

 

 이후 고인의 육성녹음을 근청했으며, 장사익씨는 "봄날은 간다"는 조가를 불렀다.

 

 장의위원장, 유족, 국회의원, 장의고문등의 순으로 분향 및 헌화를 진행한 뒤 중구청에서 노제를 지낸 후 고인의 유해는 경남 창녕의 선산에 안치됐다.

 

■ 고 성낙합 구청장 구정 어떻게 이끌었나

 

중구 복지행정 벤치마킹 잇따라

  사회안전망 국무총리실서도 큰 관심

  30여년 공직외길 '청백리 표상' 정평

 

 지난 3월10일 순직한 고 성낙합 구청장은 2004년6월5일 보궐선거에서 민선 제4대 중구청장에 당선된 뒤 1년8개월 동안 중구를 변화와 개혁으로 이끌어 온 인물이다.

 

 그는 으뜸중구발전계획을 세우고 중구발전을 위한 9개 분야 37개 시책, 200개의 과제를 발굴하고 중구사회안전망 구축과 함께 경제활성화, 주차난 해소, 청계천복원과 연계한 도시환경정비, 녹지공간확충등 22대 중점전략 과제를 선정해 중구를 경쟁력 있는 일류중구, 세계속의 으뜸 중구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전력투구 해 왔다.

 

 민선4대 구정 운영방향으로 △활력넘치는 지역경제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 △일류수준의 교육환경 △빠르고 편리한 교통 △더불어 잘사는 복지사회 △참여와 변화의 만족행정으로 정하고 발빠른 변화를 주도해 왔다.

 

 특히 민간 공공부문이 함께하는 복지행정의 새로운 모델인 중구사회안전망은 경제양극화 심화등으로 신빈곤층이 증가함에 따라 법적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차상위계층의 생계보호가 절실하다는 판단으로 추진, 이 사업이 저소득과 소외계층의 자활과 후원을 위한 획기적인 방안으로 평가돼 국무총리실에서도 벤치마킹할 정도로 대내외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와함께 1직원 1가정 보살피기, 찾아가는 1동 1방문간호사제, 무료종합진료등 다양한 의료서비스를 확대해 나가면서 수요자 중심의 보건의료 서비스 제공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는 중구사회안전망을 브랜드화 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중구를 변화와 개혁으로 이끌어 왔던 그는 1949년 경남 창녕에서 부친인 고 성수영 옹과 다정다감한 모친 고 신말순 여사 사이에서 6남매 중 5째로 태어났다.

 

 하지만 가난한 산골에서 태어나 공부는 커녕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어린시절, 등록금이 없어 중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마을 친구들이 등교하던 모습을 담벼락에 숨어서 바라보다가 눈물을 삼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다행히 도비 장학금을 받게 되면서 중학교와 경남고를 졸업할 수 있었으며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상경열차를 타고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다고 생전에 밝혔다.

 

 주경야독으로 열심히 노력한 결과 서울대에 입학, 동양사학과를 졸업했으며 동국대 행정대학원에서는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해군 장교의 복무를 마치고 전역해서는 제22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면서 공직생활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그 뒤 남대문경찰서장, 경찰대학 교수부장등의 주요 요직을 거치면서 30년간의 공직생활을 하면서 멸사봉공의 좌우명을 실천하면서 살아왔다고 한다.

 

 특히 남대문 경찰서장으로 재임하면서 지역 곳곳을 수시로 돌면서 민생치안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어려움까지 듣는 서민적인 서장으로 주변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경험이 있기에 주위 모든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데 앞장 설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30여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청렴한 공직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는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 근정포장, 녹조근정훈장등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2002년 6.13동시 지방선거에서 중구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일념으로 한나라당 중구청장 후보로 출마했지만 당시 김동일 후보에게 3%라는 근소한 표 차이로 아쉽게 낙선하는 아픔을 맛보게 된다.

 

 하지만 그는 이에 실망하거나 굴하지 않고 중구지역 발전연구소를 만들어 중구발전의 장으로 승화시키면서 미래를 위한 준비작업을 철저히 다진 결과 2004년 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당당히 당선, 제4대 중구청장 자리에 올랐다. 향년 57세인 그는 유족으로 부인인 박복수 여사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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