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내 남산동에 위치한 국내 유일의 초전섬유ㆍ퀼트박물관에는 조각보를 비롯한 우리 전통 보자기가 전시되어 있다.
포근하고 아늑하기만 한 엄마의 자궁에서 나와 처음으로 세상과 대면하던 날, 결코 녹록치 않을 세상살이의 첫 단추를 끼운 탄생을 축하하며 따뜻한 온기로 감싸안아준 건 할머니가 곱게 바느질한 배넷저고리였다. 무상하게 흐른 세월 앞에 울고 웃으며 살아온 삶의 여정을 마치는 순간, 못다한 아쉬움을 달래주는 건 누군가가 정성껏 바느질한 수의일 것이다. 이렇듯 바느질 문화는 우리나라 국민의 정서와 민족성을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네 어머니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섬유예술이 편의주의가 확산되면서 점차 잊혀져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바로 잡기 위해 지난 1998년 관내 남산동에 개관해 올해로 7주년을 맞은 국내 최초의 초전섬유ㆍ퀼트 박물관을 찾았다.
전시는 물론 체험프로그램ㆍ강좌도 열어
한국의 바느질 문화 세계상품 저력 충분
◈ 초전섬유ㆍ퀼트 박물관은
남산 기슭에 위치한 국내 최초이자 유일의 섬유예술박물관인 초전섬유ㆍ퀼트 박물관은 국내 편물명장 1호인 김순희 관장이 한국 전통 조각보 기법의 전승과 우리 옛 것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한 사명감과 뚝심으로 지난 1998년 10월27일 개관한 박물관이다.
50여년 가까이 섬유예술에 몸담아 온 김 관장은 네 명의 아이를 반듯하게 키운 정 많고 사연 많은 집을 개조하고, 한국의 훌륭한 바느질 문화만큼은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굳은 심지로 박물관을 개관했다.
한 개인의 간절한 소망과 소신, 혼을 담아 문을 연 초전섬유ㆍ퀼트 박물관에는 김 관장의 소장품들인 보자기ㆍ상보ㆍ전통자수ㆍ활옷 등의 전통섬유예술작품 수백여점과 세계 각국의 전통 퀼트와 섬유작품 등이 수장돼 있다.
특히 대가 끊길 위기에 처해있는 조각보와 전통 자수보들은 상설 전시하고 있으며, 연 6∼7회 정도의 국내외 기획전도 꾸준히 열고 있어, 관람객들의 시야를 넓혀주고 있다.
평소에는 소장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의 개념으로, 상설전 개최시에는 붙박이장 등을 설치해 미술관 개념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금은 '2005 아미쉬의 예술세계'란 주제로 아미쉬 퀼트 전시회가 열리고 있으며, 2005 세계퀼트작가 100인전 등 지금까지 79회의 전시회를 개최해 한국인들의 섬유예술에 대한 안목을 넓히고, 이해를 돕는데 주력하고 있다.
◈ 마음을 울리는 오래된 것의 미
남산 자락에 위치한 박물관에 들어서면 전시물부터 작은 기념품에 이르기까지 어느것 하나 정성이 깃들지 않은 것이 없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무심코 보고 별 것 아닌 양 쉬이 생각해버리겠지만 내 손으로 구멍난 양말 하나라도 제대로 꿰매본 사람이라면 하나의 조각보를 만들기 위해 쏟았을 집중력과 탁월한 예술적 감각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박물관에는 한국 전통자수 및 조각보, 전통 장신구뿐만 아니라 전통 한복을 비롯한 말 그대로 제대로인 우리네 섬유예술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한낱 자투리 천들이 모이고 모여 옛날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의 손끝에서 이처럼 실용적이고 현대미술가들도 감탄해 마지않는 조각보가 탄생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여인네들 한명 한명이 예술가적 자질을 숨기고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박물관에는 한국 전통 섬유예술작품 외에도 북한ㆍ중국 등의 자수품 및 전통복식과 해외 전통퀼트 및 패치워크, 세계의 민속 복식 인형 등도 전시되어 있어 아빠 엄마가 아이들과 함께 오면 섬유예술을 통해 세계 민족의 정서를 알려줄 수 있는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김 관장은 흔히 퀼트 하면 외국의 것으로만 인식하고 우리 문화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자투리 천을 이용해 실생활에 필요한 것을 만들어 사용했다는 점에서 닮은점이 많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어우러질 것 같지 않은 색과 색을 덧대어 오묘하게 조화시켜 멋스러운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도 닮은꼴이라고.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는 우리 조각보 역시 세계 속의 한국인을 알리고 퀼트처럼 문화상품화 시킬 수 있는 저력이 있는 예술품이라고 강조한다.
바느질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전통 섬유예술에 대한 김 관장의 정열적이면서도 진실한 애착이 묻어나오는 박물관은 한 개인의 강한 집념으로 시작해 세계의 내노라할 명작들이 모이고, 한국의 전통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발판이 되고 있다.
◈ 문화의 계승ㆍ전파를 위한 배움의 미
초전섬유ㆍ퀼트박물관은 단순히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과 강좌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제는 단추 하나 다는 것조차 세탁소에 맡기는 것이 보편화돼 버린 안타까운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매주 토요일에는 중ㆍ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퀼트 등의 바느질을 가르쳐주고 있고, 여름ㆍ겨울 방학에는 각 학교 가정 선생님을 대상으로 특강도 열고 있다.
지하1층에 자리한 박물관 윗층인 1층에 자리한 제일섬유ㆍ퀼트디자인학원에서는 퀼트에 관심이 있거나 장래 패치워크퀼트 지도자가 되고 싶은 사람, 퀼트강사로 활동하고 싶은 미래 퀼트계의 인재육성을 위한 강좌도 개설, 운영하고 있다.
초급(3개월과정)ㆍ중급(3개월과정)ㆍ강사(9개월과정)ㆍ지도자양성과정(6개월 과정)으로 나뉘어 매주 화ㆍ수요일 오전 10시반과 오후 1시반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문의☎ 753-4074)
또한 같은 건물 2층에서 일본어 학습 전문과정을 배울 수 있는 문화외국어학원이 있어 월∼금요일까지 매일 4시간씩 회화ㆍ청해ㆍ문형/문법ㆍ한자ㆍ독해ㆍ작문 등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다. (문의☎752-4071)
특히, 박물관부터 외국어학원ㆍ퀼트 강좌에 이르기까지의 포괄적인 문화사업을 김 관장의 딸인 주리, 주선씨가 함께 운영하고 있어 문화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내리사랑을 받은 자매의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도 엿볼 수 있다.
◈ 박물관 이렇게 이용하세요
뀱 관람시간 - 오전 10시∼오후 5시(입장은 폐관 30분 전까지)
뀱 휴관일 - 공휴일ㆍ일요일(기획전 및 특별전 기간은 무휴)
뀱 관람료 - 성인 5천원(단체 3천원), 중고생 및 군인 3천원(단체 2천원), 어린이 2천원(단체 1천원) 경로(60세 이상) 2천원(단체 1천원)
■ 인터뷰 / 김순희 관장
민족정서 깃든 보자기
한국 섬유예술의 극치
"학교 과제 때문에 아이들 손을 잡고 박물관을 찾은 엄마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정말 안타까운건 입장료 몇 천원이 아깝다며 엄마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고, 아이만 덜렁 박물관에 들여보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거죠"
국내 유일의 섬유예술박물관을 이끌고 있는 김순희 관장은 우리나라 선조들의 지혜와 얼이 담겨 있는 섬유예술에 대해 많은 젊은이들과 엄마들이 단순히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고 구할 수 있는 보자기 정도로만 치부해 버리는 현실이 개탄스럽기만 하다.
보자기는 바늘과 실, 천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만들 수 있지만 이것도 하나의 예술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배색과 정교한 바느질 솜씨, 만드는 사람의 인내심과 정성이 갖춰져야 제대로 된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보자기는 일본 교포들에게는 자기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보물처럼 인식되고 있어요. 일본 잡지에 우리 보자기 기사가 실리면 두배는 더 팔린다는 얘기도 들었지요"하며 우리나라 사람들의 섬유예술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함을 거듭 강조한다.
그는 퀼트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우리 보자기를 알리기 위해서는 퀼트와 연계해 보자기의 우수성을 알리고, 문화상품화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김 관장은 우리 섬유예술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국내외 기획전을 79회째 열고 있어 주위의 귀감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국제 퀼트 스터디 센터에 전통 보자기 3점을 기증하기도 했으며, 오는 2008년에는 30여점을 기증해 외국인들에게 우리 보자기의 미를 알릴 계획이다.
우리나라 편물명장 1호인 그는 1955년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 1987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덕성여대, 중앙대 가정학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현재는 초전섬유ㆍ퀼트박물관장과 국제 퀼트 스터디 센터의 이사를 맡고 있다.